공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이 사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에 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라 구사군의 북쪽에 있는 백월산(白月山)에서 동남쪽 삼천보쯤 떨어진 곳에는 선천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두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노힐부득(努肹夫得)이고, 다른 사람은 달달박박(怛怛朴朴)이다. 둘 다 풍채와 골격이 범상치 않았고, 세상을 마음에 품고 있어 서로 좋은 친구로 지냈다.
스무 살이 되자 두 사람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세상사의 무상함을 느끼며 속세를 떠나 백월산 무등곡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암자에 살면서 노힐부득(努肹夫得)은 미륵불을 성심껏 구했고, 달달박박(怛怛朴朴)은 미타불에게 예불했다. 3년이 못 된 초파일이었다. 해가 질 무렵 나이가 한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낭자가 달달박박을 찾아왔다.
달달박박(怛怛朴朴)이 보니 자태가 곱고 난초향과 사향 냄새를 풍기는 낭자였다. 그 여인은 '해 저문 산골에 갈 길은 아득한데 길은 막히고 안가는 멀어 사방이 막힌 몸 오늘은 이 암자에서 자려 하오니 자비하신 스님이여 노하지 마오'라며 자고 가기를 청했다. 그러자 달달박박은 '절은 청정한 곳이라 그대가 가까이 할 곳이 아니니, 어서 다른 곳으로 가시오'라며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낭자는 이번에는 노힐부득(努肹夫得)을 찾아 청하니 노힐부득이 말했다.
"이 밤중에 어디서 왔는가?"
"맑기가 태허와 같은데 어찌 오고 감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선배의 뜻이 깊고 덕행이 높고 굳다는 말을 듣고 장차 도와서 보리를 이루고자 할 따름입니다."
그러면서 '해 저문 깊은 산길에 가도가도 사방이 막혔네. 송죽 그늘은 그윽하기만 하고 골짜기를 울리는 물소리 더욱 새롭구나. 자고 가려 함은 길을 잃어서가 아니요. 스님을 인도하려 함일세. 원컨대 내 청을 들어만 주시고 길손이 누구인지 묻지 마오'라며 자고 가기를 청했다.노힐부득이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 말했다.
"이곳은 여자가 더럽힐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오. 깊은 산골짜기에 날이 저물었는데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이에 낭자를 암자 안으로 맞아들였다. 노힐부득은 마음을 맑게 하고, 지조를 닦아 등불이 비치치는 벽 아래서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밤이 깊었을 때 낭자가 노힐부득(努肹夫得)을 불렀다.
"제가 불행하게도 산기가 있으니 짚자리를 좀 준비해 주십시오."
노힐부득(努肹夫得)은 낭자를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은은히 촛불을 비추자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목욕하기를 청했다. 노힐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일었으나, 측은한 마음이 더 컸기에 목욕물을 준비하고 목욕을 시켰다.
그러자 통물 속에서 강한 향이 풍기며 금빛으로 변했다. 노힐부득(努肹夫得)이 크게 놀라자 낭자가 말했다.
"스님께서도 이 물에 목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낭자가 굳이 권하자 노힐부득은 얼결에 그렇게 하기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더니 살결은 금빛이 되었다. 어느새 그 옆에는 연화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낭자가 노힐부득에게 앉기를 권하며 말했다.
"사실 나는 관음보살이오. 대사의 성불을 돕고자 온 것이라오."
말을 마친 낭자는 이애 보이지 않았다.
한편 달달박박(怛怛朴朴)은 노힐부득(努肹夫得)이 자신처럼 낭자를 거절하지 못하고 오늘 밤 반드시 계를 더렵혔을 것이라 상상하면서 비웃어 주어야겠다며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생각과는 달리 노힐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광채를 빛내고 있느니, 그 몸은 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달달박박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고 절하며 말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노힐부득(努肹夫得)이 그 연유를 자세히 이르자 달달박박(怛怛朴朴)은 탄식해 말했다.
"내가 부처님을 뵙는 천운을 얻고도 도리어 대우하지 못했구나. 큰 덕이 있고 지극히 어진 그대가 나보다 먼저 이루었으니 부디 지난날의 약속을 잊지 마시고 일을 일을 함께 하길 바랍니다."
이에 노힐부득이 '아직도 통속에 물이 남았으니 목욕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라며 목욕하기를 권하니 달달박박이 목욕하여 노힐부득과 함께 무량수를 이루니 두 부처가 서로 마주 대하고 있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전하는 이 이야기는 公心 若比私心 何事不辨(공심 약비사심 하사불변) 공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이 사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에 비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道念 若同情念 成佛多時(도념 약동정염 성불다시) 도를 향하는 마음이 만약 남녀의 애정과 같다면 얼마든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진리의 말씀 입니다. 삶속에서 이같은 처녀를 만나지 않는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세상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공적인 일을 먼저 생각하라는 지혜입니다. <꽃사진: 계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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