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공명가(孔明歌)

박남량 narciso 2015. 3. 30. 09:44


공명가(孔明歌)




공명(孔明)의 갈건야복(葛巾野服)으로 남병산(南屛山) 올라 단(壇) 높이 놓고 동남풍 빌제 동에는 청룡기(靑龍旗)요 북에는 현무기(玄武旗)요 남에는 주작기(朱雀旗)요 서에는 백기(白旗)로다. 중앙에는 황기(黃旗)를 꽂고 오방기치(五方旗幟)를 동서남북으로 좌르르 버리워 꽂고 발 벗고 머리 풀고 학창흑대(鶴氅黑帶) 띠고 단에 올라 동남풍 비른 후에 단하(壇下)를 굽어보니 강상(江上)에 둥둥떠 오는 배 서성(徐盛), 정봉(丁奉)의 밴줄로만 알았더니 자룡(子龍)배가 분명하다.

즉시(卽時) 단하(壇下)로 내려가니 자룡 선척(船隻) 대하였다가 선생을 뵈옵고 읍(揖)하는 말이 선생은 체후일향(體候一向) 하옵시며 동남풍 무사히 빌어 계시나이까.

동남풍은 무사히 빌었으나 뒤에 추병(追兵)이 올듯하니 어서 배 돌리어 행선(行船)을 하소서 자룡이 여짜오대 소장(小將)하나 있아오니 무삼 염려가 있아오리까.

즉시(卽時) 배를 타고 하구(夏口)로 돌아갈제 주유(周瑜), 노숙(魯肅) 다려 하는 말이 공명(孔明)은 제아무리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 육도(六韜) 삼략(三略)을 무불눙통(無不能通)할지라도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동남풍 빌기는 만무(萬無)로구나.

말이 맞지 못하여 풍운(風雲)이 대작(大作)하며 동남풍 일어날 제 검정 구름은 뭉게뭉게 뇌성벽력(雷聲霹靂)은 우루루루 바람은 지동(地動)치듯 번개는 번쩍 빗방울은 뚝뚝 떨어질 제 주유 감짝놀라 북창(北窓)을 열고 남평산 바라를 보니 단상깃발은 펄펄 나부끼여 서북을 가리워 칠 제

이때에 서성, 정봉, 양장(兩將) 불러 분부(吩付)하되 공명은 천신(天神)같은 모사를 두었다가는 일후 후환(後患)이 미칠 듯 하오니 너의 두 장사(將師)는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남평산 올라가여 공명의 머리를 버혀를 오라. 만일 버혀오지 못하며는 군법시행(軍法施行)을 행하리라로다.

서성, 정봉, 분부듣고 필마단기(匹馬單驥)로 장창(長槍)을 높이들고 서성을랑 수로(水路)로 가고 정봉을랑 육로(陸路)를 가여 남평산 올라가니 공명선생 간곳없고 다만 남은 건 좌우 단 지킨 군사뿐이랴 군사다려 묻는 말이 선생이 어디로 가시드냐. 군사 엿자오대 발벗고 머리풀고, 장창 옆에 끼고 단에 올라 동남풍 비른 후에 단하로 내려 가시더니 어디로 가신 종적(踪跡)을 아지 못하나이다.

서성이 그말 듣고 대노(大怒)하여 산하(山下)로 충충 내려가 강구로 점정 당도하니 강구에 인적(人寂)은 고요한데 다만 남은 건 좌우 강 지킨 사공 뿐이라 사공더러 묻는 말이 선생이 어디로 가시더냐 사공이 여짜오대, 이제 웬 한사람 발 벗고 머리 풀고 구절죽장(九節竹杖) 짚고 예와 섰더니 강상으로 웬 한 편주(扁舟) 둥둥 떠오더니 웬 한 장수 선두(船頭)에 성큼 나서 양손을 읍(揖)하고서 선생을 맞아 모시고 강상으로 행하더이다.

서성이 그말 듣고 선척을 재촉하여 순풍(順風)에 돛을 달고 따를 적에 앞에 가는 배 돛 없음을 보고 점점 따르다가 앞에 가는 배에 공명 선생이 타셨거든 잠깐 노(櫓) 놓고 닻 주고 배 머무르소서 우리 도독(都督) 전의 신신부탁이오니 말한마디 드릅시고 행선을 하소서.

공명이 뱃머리 성큼 나서 하는 말이 서성아 말 들어라. 내 너의 나라에 은혜(恩惠)도 많이 베풀고 동남풍까지 빌어 주었건 무삼 혐의(嫌疑)로 나를 해(害)코져 하느냐 너의 두 장수(將帥)는 부질없는 길을 따르지 말고 빨리 돌아가 내말 갔다 너의 도독(都督)에 전하고 너의 국사(國師)나 도으려무나.

서성의 드른체 아니하고 싸를 적에 자룡이 뱃머리 성큼 나서 하는 말이, 서성아 말들어라. 내 저를 죽일 것이로되 양국(兩國)의 화기(和氣)가 상할 듯하여 죽이지는 않고 살려 돌려 보내거거니와 잠깐 이내 수단(手段)이나 비양(比楊)하노라.

철궁에 왜전(矮箭) 먹여 각지(角指) 끼어들고 좌궁(左弓) 우거 질까, 우궁(右弓)이 떨어질까, 도망갈까, 전진할까, 각지손 지긋떼니 강상에 번개같이 빠른 살이 서성 돛대맞아 물에 텀벙 떨어지니 돛은 좌르르 용총 끊어져 뱃머리 피빙 핑 돌아를 갈 제 재삼(再三) 연하여 철궁(鐵弓) 왜전(矮箭)먹여 각지 손 지긋 떼니 강상에 수루루 건너가 서성 투구 맞아 물에 텀벙 떨어지니 서성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따라 겨우 인사차려 사공더러 묻는 말이 저기 저 장수(將帥)는 어떠한 장사드냐 사공이 여짜오대.

전일(前日) 장판교(長板橋) 싸움에 아두(阿斗)를 품에 품고 순식간(瞬息間)에 수만대병(數萬大兵)을 제쳐 버리고 장판교로 돌아와도 아두 잠들고 깨우지 않았다 하시던 당산 땽의 조자룡이로소이다. 서성이 그말 듣고 할 일 없어 빈 뱃머리를 본국(本國)으로 돌리며 자탄(自嘆)하고 가는 말이.

『한종실(漢宗室) 유황숙(劉皇叔)은 덕(德)이 두터운 저런 명장(名將)을 두었건만 우리 주공(主公)은 다만 인자(仁慈)뿐이라 천의(天意)를 거역(拒逆)할 수가 없어 나만 돌아만 가노라.』


이 공명가(孔明歌)는 공명(孔明)이 갈건야복(葛巾野服)으로 남병산(南屛山) 올라 동남풍(東南風)을 비는 광경을 그린 노래이다. 사설공명가(辭說孔明歌)와 같은 것인데 사설공명가는 동남풍을 비는 축문만을 자세하게 엮은 것이다. 이 공명가는 동남풍을 빅고 무사히 하구로 돌아가는데 까지를 엮는 것으로 사설이 길고 말이 많아서 대단히 벅찬 노래이다.
이 노래가 이렇게 길어도 지루하지 않고 곡조 또한 따분하지 않은 것은 이 또한 서도(西道) 잡가(雜歌)의 특징이다. 하여튼 서도의 대표적인 노래이다. 이 노래는 초한가(楚漢歌)와 더불어 서사시(敍事詩)인 동시에 서도창의 정수(精隨)이다. 장단은 삼박(三拍)을 근간(根幹)으로 하되 사박(四拍), 오박(五拍), 육박(六拍) 등 소절마다 그 장단이 다른다.<한국전래민요전집/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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