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전(祭奠)
백오동풍(百五東風)에 절일(節日)을 당하여 임의 분묘(墳墓)를 찾아가서
분묘 앞엔 황토(黃土)요, 황토 위에다 제석(祭石)을 깔고
제석 위에다 조조반(祖祖盤) 놓고 조조반 위에다 자면지(玆面紙)를 깔고
자면지 위에다 상간지(上間紙)를 펴고 차려진 음식을 버리울제
우병좌면(右餠左麵) 어동육서(漁東肉西) 홍동백서(紅東白西) 오기탕(五器湯)을
실과(實果)를 전자후준(前煮後樽) 좌르르 버릴 적에
염통산적 양보끼 녹두떡 살치찜이며 인삼녹용에 도라지채며
먹이 좋은 녹두나물이며 쪼개 쪼개는 콩나물도 놓고
신계곡산(新溪谷山) 무인처(無人處)에 머루 다래며
함종(或從)의 약률(藥栗)이며 연안백천(延安白川)의 황밤대추도 좋고
경상도 풍기준시(慶尙道 豊基樽枾) 수원홍시(水原紅枾)며
능나도(綾羅島) 썩건너가 참모롱이 둥글둥글 청(靑)수박을
대모장도(瑇瑁粧刀) 드는 칼로 웃꼭지를 스르르르 돌리워 떼고
강릉생청(江陵生淸)을 주루룩 부어 은(銀)동글반 수복저(壽福著)로다.
씨만 송송 골라내며 한 그릇매 한그릇은 갱(羹)이로구나.
술이라니 이백이기경(李白耳奇鯨) 포도주에 떨어졌다.
낙화주(落花酒)며 산림처사(山林處士)의 송엽주(松葉酒)로다.
도연명(陶淵明)의 국화주며 마고선녀(磨姑仙女) 천일주(天日酒)
맛좋은 감홍로(甘紅露) 빗좋은 홍소주(紅燒酒) 청소주(靑燒酒)
온갖 술을 다 그만두고 청명한 약주술을 노자작앵무배(盧磁酌鸚鵡盃)에
첫잔 부어 산제(山祭)하고 두잔 부니 첨작(添酌)이요.
석잔 부어서 분상묘전(墳上墓前)에 퇴배연후(退盃然後)에
옷을 벗어 나무에 걸고 그냥 그 자리에 되는대로 펄석 주저앉어
오열장탄(嗚咽長嘆)에 애곡(哀哭)을 할뿐이지 뒤따를 친구가 전혀 없구려
잔디를 뜯어 모진 광풍(狂風)에 휘날리며 왜 죽었오 왜 죽었오
옥같은 나 여기두고 왜 죽었단 말이요.
선영(先營)에 풀이 긴들 절초(折草)할 일 뉘있으며
한식명절 당도하여도 잔 드릴 사람이 전혀 없구려.
일구황분(一口黃墳)이 가련하고나 천지(天地)로다.
집을 삼고 황토로다 포산삼으며 금잔디로 이불을 삼고
산천초 목을 울을 삼으며 두견(杜鵑) 접동이 벗이로다.
<심야공산(深夜空山) 다 저믄 밤에 홀로 누어있기 무섭지 않단 말이요.
임 죽은 혼백이라도 있거든 나를 다려만 가렴아>
이 제전(祭奠)은 서도(西道) 잡가(雜歌)의 하나이다.
이 노래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꼬집는 애원(哀怨)이
생자(生者)는 필멸(必滅)이요, 회자(會者)는 정리(定離)라.
사람은 한 번 낳다가 한 번 죽는 것이요. 만나는 사람은 작별(作別)하게 마련이건만
그래도 이 세상(世上) 사람들은 이 엄연(儼然)한 사실(事實) 앞에
너무나 무기력(無氣力)하고 눈물이요, 한숨이요 하고 울부짖는다.
인생사고(人生四苦)인 생노병사(生老病死)를 면(免)치 못하는 인간이
먼저 한걸음 앞선 임 무덤을 찾아가서 애절원통(哀切怨痛)
넋두리를 쏟아 놓는 단장록(斷腸錄)이 바로 이 제전(祭奠)이다.
이 노래는 대단히 긴 것을 줄여서 앞에 사설을 빼고 백오동풍(百五東風)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인생무상을 절실히 통탄한 서도 특유의 노래이다. 공명가 초한가 같이 끝을 수심가로 여민다.
(한국전래민요전집/외국어어학사/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