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딜레마 증후군(Hedgehog's Dilemma Syndrome)을 앓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오늘 그대는 장미가 가시를 가졌다고 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시가 장미를 가졌다고 감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을 했습니다. 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못해 자신의 온기만이라도 전해주려던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상처만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고 싶어도 안지 못했던 그들은 멀지도 않고 자신들 몸에 난 가시에 다치지 않을 적당한 거리에서 함께 서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온기를 다 줄 수 없어도 그들은 서로 행복했습니다. 나희덕의 산문집<빈통의 물>에 실린 <내 인생의 가시>란 글을 함께 합니다.
가시는 꽃과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또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찔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제 속에 자라나는 가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번 심어지고 나면 쉽게 뽑아낼 수 없는 탱자나무 같은 것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뽑아내려고 몸부림 칠수록 가시는 더 아프게 자신을 찔러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내내 크고 작은 가시들이 나를 키웠습니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가시는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모나 육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나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원하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가시 때문에 오래도록 괴로워하고 삶을 혐오하게 되기도 합니다.
로트렉이라는 화가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었지만 사고로 인해 두 다리를 차례로 다쳤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고 다리 한쪽이 좀 짧았다고 합니다. 다리 때문에 비관한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결국 창녀촌에서 불우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절망 속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아직까지 남아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내 다리 한쪽이 짧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시는 바로 남들보다 약간 짧은 다리 한쪽이었던 것입니다.
로트렉의 그림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래 고통받아온 것이 오히려 존재를 들어올리는 힘이 되곤 하는 것을 겪곤 합니다. 그러니 가시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뺄 수 없는 삶의 가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잔을 얼마나 쉽게 마셔 버렸을 것인가, 인생의 소중함과 고통의 깊이를 채 알기도 전에 얼마나 웃자라 버렸을 것인가. 실제로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재능이 많은 것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 그 날카로운 가시야말로 그를 참으로 겸허하게 만들어줄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시야말로 우리가 더 깊이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한 무리의 고슴도치가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데워 얼어 죽지 않으려고 한 덩어리로 뭉쳤습니다. 그런데 서로 몸을 맞대자마자 예리한 가시에 찔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떨어졌습니다. 좀 지나자 이들은
다시 몸을 데울 필요를 느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한 덩어리로 뭉쳤지만 또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고슴도치들은 두 고통 사이를 왕래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에서 유래한 말이 있습니다. 고슴도치 딜레마 증후군(Hedgehog's Dilemma Syndrome)입니다.
고슴도치딜레마 증후군(Hedgehog's Dilemma Syndrome)이란 항상 자신을 숨기고 상대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증후군으로 인간관계 초기부터 다른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를 방어하려는 사람의 심리를 가리키는 말로서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피차 서로 간섭할 일도 없고 부딪칠 일도 없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게다가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일도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려 하며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의 가시는 고통 그 자체이었을 것입니다. 날카로운 가시가 있기도 하였으며, 그것이 고통인지도 모르기도 하였으며, 외로움이 뒤를 따라 다니기도 하였으며, 두려움의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기도 하였지만 삶의 끝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반성의 시간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이 결코 우리를 만족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삶의 허무만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고통이란 우리의 실체를 발견하게 하여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고슴도치딜레마 증후군(Hedgehog's Dilemma Syndrome)을 앓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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