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은 흰 수건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게임을 지속하기로 결정하는 사람을 위해 마련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중세부터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 마을에서 한 아이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그 즉시, 범인으로 지목된 한 유대인이 체포되었다. 그는 감옥에 들어간 후에야 자신이 희생양으로 정해졌으며 더 이상 어떤 변호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랍비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요쳥 했다. 감옥에 도착한 랍비는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 랍비는 그를 안심시켰다.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악마가 아무리 유혹해도 넘어가지 마세요. 하느님이 굽어살피시기를 ∙∙∙∙∙”
남자는 랍비에게 물었다.
“하지만 어떡해야 하죠?”
“어쨌든 포기하지만 않으면 방법이 생길 겁니다.”
어느덧 재판일이 되었고, 판사는 짐짓 공평한 판결이라는 평판을 얻고자 피고에게도 결백을 증명할 기회를 주겠다며 이렇게 제안했다.
“피고는 신앙을 갖고 있으니, 나는 하느님에게 이 문제를 맡기고자 한다. 나는 하나의 종이 위에 ‘무죄’ 다른 종이 위에는 ‘유죄’라고 적을 것이다. 피고는 그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그대의 운명은 하느님에게 달렸다.”
그 유대인이 생각하기에 판사는 아마도 두개의 종이 위에 모두 ‘유죄’라고 적어 놓을 것이 뻔했다. 간단히 말해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는 ‘무죄’라고 쓰인 종이를 고를 수가 없다. 그런 종이는 애초부터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랍비의 충고를 기억해내고, 잠깐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때 새로운 해결책이 번뜩였다. 그는 하나의 종이를 골라 그것을 입에 넣고 삼켜버렸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그걸 먹어버리면 자네의 운명을 확인할 수가 없잖나!”
남자는 대답했다.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다른 종이에 적힌 말의 정반대가 바로 저의 운명일 테니까요>”
랍비(Rabbi) 니우통 봉데(Nilton Bonder)의 <이디시 콥(Yiddishe Kop)>에 실린 글입니다. 상황을 제한된 시야로만 바라보았다면 유대인 남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제적이고 교묘한 함정 속에서도 상황을 재구성함으로써 현실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유대인의 재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대부터 유대 신비주의 전통에서는 현실이 마치 양파처럼 겹겹이 이루어져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유대인들은 현실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민족적인 기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껍질을 벗김으로써, 상황의 한쪽 면만을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를 이용해 위기를 극복해내는 유대인의 사고방식을 배워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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