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헛된 즐거움은 잠깐이다 - 조신몽(調信夢)

박남량 narciso 2014. 10. 10. 10:26


헛된 즐거움은 잠깐이다 - 조신몽(調信夢)




즐거움이란 마음이 흐뭇하고 기쁜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마음의 저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즐거움은 사람마다 그 모양을 달리하지만 만족할 줄 안다는 것에는 모두가 똑같다. 만족이 바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만족에는 항상 욕심과 탐욕이라는 함정이 있다. 쾌락의 문을 두드리며 거듭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헛된 즐거움은 잠깐이고 진리가 영원불변함을 일깨워주는 이야기가 있다. 조신몽(調信夢)이라고도 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는 꿈 이야기이다.

옛날 신라(新羅)시대 때의 일이다.
왕은 조신(調信)이라는 스님을 세규사(世逵寺)라는 절에 보내어 장원(莊園) 관리인으로 삼았다. 조신(調信)은 세규사(世逵寺)에 와서 경내의 살림을 도맡아 열심히 하였기 때문에 절은 점점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둥근 달이 하늘에 높이 떠오를 때 조신(調信)은 석탑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처녀를 발견하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세상에 저렇게도 예쁜 여인이 있나?』
조신(調信)은 그 처녀를 한눈에 좋아하게 되었다.

조신(調信)은 다음날부터 낙사사의 관음보살에게 자신이 소원하는 바를 빌기 시작했다.
『관음보살님, 그 처녀와 혼인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당해도 좋겠습니다.』
조신(調信)이 관음보살에게 열심히 빌었지만 들리는 소문이라고는 그 예쁜 처녀가 며칠 안에 혼인을 한다는 소식 뿐이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픈 조신(調信)은 법당에서 슬피 울다가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인지 생시인지 그 어여쁜 처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조신(調信)을 흔들어 깨웠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스님, 소녀가 언젠가 스님을 한번 뵌 후로는 이렇게 마음을 주체치 못하고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뭐라구요?』
조신(調信)이 반신반의 하며 묻자 처녀가 대답했다.
『평소 스님을 사모하고 있었사온대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다른 곳으로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날마다 스님의 모습이 떠올라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조신(調信)은 몹시 기뻐하며 세규사(世逵寺)에서 나와 그 처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서 40년을 함께 하는 동안 다섯 자녀를 두었다.그러나 워낙 가난하여 이곳저곳으로 떠돌며 그때그때 살기에 급급했다. 어찌나 가난한지 껴입은 옷은 누더기나 다름없었다. 명주(溟洲) 땅의 해현령(蟹縣嶺)을 지날 때마다 열다섯 살이나 되는 딸이 굶어죽는 일도 있었다.

조신(調信)이 슬피 울며 그곳에 딸아이를 묻자 부인이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혈색이 좋고 의복도 깨끗했습니다. 비록 맛이 없는 음식이라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지금까지 지내왔으나 이제는 아이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도 미처 돌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년가약도 버들강아지처럼 바람에 날아가 흔적이 없어졌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헤어지고 만나는 것은 연이니 이제는 이곳에서 각자 헤어져 살길을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헤어지자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부부가 따로 두 아이씩 데리고 가기로 해요. 저는 남쪽으로 가겠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새벽 바람이 불어와 등잔불이 깜빡였다. 멀리서 닭우는 소리가 들릴 때 조신(調信)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신(調信)의 머리는 온통 새하얗게 변하고 손이며 발 그리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한 것이었다.
『부처님, 제가 잠시 탐욕스런 생각을 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조신(調信)은 날마다 법당에 나가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다.
얼마 후, 꿈속에서 아이를 묻었던 해현령(蟹縣嶺)이란 곳에 가게 되었다. 문득 지난 일이 떠올라 그곳을 파보니 놀랍게도 그곳에 돌부처가 있었다. 조신(調信)은 그 돌부처를 깨끗이 씻어 절에 안치한 다음 공덕을 닦았다고 한다.
(덕을 쌓은 바보/보성출판사/1994)


매일 매일 바뀌는 세상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헛된 즐거움은 잠깐이고 진리가 영원불변함을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결코 쉽게 행할 수 없을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전하는 조신몽(調信夢)에 담겨 있는 지혜가 이웃님들의 가슴에 속속 물들여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