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헛된 명성이란 소문에 묻어 있는 독약과 같습니다

박남량 narciso 2016. 8. 22. 14:12


헛된 명성이란 소문에 묻어 있는 독약과 같습니다



옛날에 재주 있는 두 선비가 있었는데 바로 개미와 까치였습니다. 그 둘은 서로의 재주를 시기하여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개미는 노상 까치를 헐뜯었습니다. 그 헐뜯는 정도가 황천(黃泉)까지 이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까치는 오히려 개미를 추켜세우고 다녔습니다. 그 칭찬이 푸른 구름에까지 닿을 정도였습니다. 까치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까치가 어떻게 개미를 바다다볼 수 있겠는가? 개미의 학문은 공자라 할 수 있으며, 재주는 주공(周公)이요, 글솜씨는 사마천(司馬遷)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벗을 찾으면서 개미를 찾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을 볼 줄 모르는 것이다. 또 신하를 구하면서 개미를 찾아가지 않는다면 사람을 볼 줄 모르는 군주이다."

이렇게 까치의 칭송이 그치지 아니하자 마침내 궁궐에서도 그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까치는 개미와 서로 용납을 못하는 사이인데도 개미의 현명함을 칭찬하니, 개미에게는 참으로 남괴 다른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조정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개미에게 벼슬을 주었습니다. 개미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혁혁하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개미는 여전히 까치의 단점만을 헐뜯고 다녔습니다. 그러자 까치의 아들이 물었습니다.

"개미는 항상 아버님의 욕을 하고 다니는데, 아버님께서는 항상 개미의 현명함을 칭송하고 계시니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까치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누구를 원수로 여기느냐? 저 개미란 놈이 나를 헐뜯고 다니지만 실상은 나를 도와주는 것이다. 또 나는 개미를 칭송하고 있지만 실상은 개미를 원수로 여기는 것이다. 너는 저 썩은 나무를 보지 못하였느냐? 그 나무를 초가집의 처마에 놓아둔다면 지붕의 무게를 견디겠지만 그 나무에 단청(丹靑)을 칠하여 고대광실 큰 집의 대들보로 삼는다면 자끈동 부러지는 재앙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두고 보아라. 개미는 절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과연 까치의 말대로 개미는 얼마 안 가서 헛된 이름으로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광정(李光庭 1674 - 1756)의 시문집인 눌은집(訥隱集)의 망양록(亡羊錄)에 실린 글로 ,설성경의 <세상을 거꾸로 보는 관상장이/사람과 책/1995>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이웃의 추켜세움에 자만하거나 분수에 넘치는 명예욕을 갖는다면 자칫 인생을 망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황된 자는 자신의 이름과 명예가 세워지지 아니함을 걱정하고 있으니 애석한 일입니다.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 - 1821 프랑스)이 말했습니다.
"부귀와 명예는 그것을 어떻게 얻느냐가 문제이다. 도덕에 근거를 두고 부귀와 명예라면 산골에 피는 꽃과 같이 충분한 햇볕과 바람을 받고 필 수 있다. 사치한 생활 속에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마치 태양을 그려 놓고 빛이 비추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