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큰 바람 소리 쓸쓸한 석우촌에서(蕭颯石隅村)

박남량 narciso 2013. 11. 15. 10:36

큰 바람 소리 쓸쓸한 석우촌에서(蕭颯石隅村)

 



한 말은남쪽으로 가고,
또 한 말은 동쪽으로 가야 하네
숙부님들 머리엔 백발이 성성하고,
큰 형님 두 뺨엔 눈물이 줄을 잇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었네
뒤돌아보지 말고 가야지,
다시 만날 기약이나 새기면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 이덕일 / 다산북스>


숭례문에서 남으로 3리 떨어진 곳에 석우촌(石隅村)이 있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정약전(丁若銓 1758 ~ 1816)이 유배를 가면서 가족과 눈물로 이별한 곳이다.

정약용(丁若鏞)과 정약전(丁若銓)은 천주교인이라는 명분으로 금오(金吾) 즉 의금부에 갇혔고 국청이 설치되었다. 그들은 목숨을 포기했다. 이미 정약전, 약용 형제는 천주교를 버린 후이지만 친형제인 정약종(丁若鍾 1760 ~ 1801)은 신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살아날 길은 그들은 천주교를 확실히 버렸지만 정약종(丁若鍾)은 그렇지 않다고 증언하는 것이었다. 친동기(親同氣)를 어찌 사지(死地)로 몰면서까지 목숨을 구걸할 수 있었겠는가? 동기(同氣)는 천륜이기에 죽을지언정 그럴 수는 없었다. 그저 목숨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정약종(丁若鍾)이 금부도사를 길에서 지나쳤는데 자신을 잡으러 가는 길이냐고 먼저 물었다. 금부도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자신이 정약종 (丁若鍾)이라고 밝히고 스스로 체포되었다. 정약종 (丁若鍾)은 국청에서 신앙을 고백하였으며 천주교를 금지시키는 것이 잘못이라고 항변하였다. 그리고 약전,약용 형제는 천주교를 버렸다고 증언했다.

정약종 (丁若鍾)이 서소문 형장에서 목이 잘리고 이틀 후 약전, 약용 형제는 유배를 떠난다. 정약종 (丁若鍾)이 처형되던 날 매형(妹兄)이며 세계 천주교 선교 사상 자청하여 영세를 받은 최초의 인물인 이승훈(李承薰)이 사형당했으며 정약종 (丁若鍾)의 아들인 철상이 잡혔다. 유배 가는 두 형제 정약전(丁若銓)과 정약용(丁若鏞)은 발은 땅에 딛고 있어도 저승의 구름을 밟고 있는 심정으로 기약없는귀양길에 석우촌(石隅村)에서 가족과 눈물로 이별하는 장면에서의 시이다..
<사진은 정약용 4형제가 태어난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인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천주교 사적지의 하나인 마재(馬峴)이다/Good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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