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유머
유머에는 그 나라의 국민성이 나타나는 것 같다. 어느 중국인이 친구들에게 흥분하며 자랑했다. “어떤 거물이 나에게 말을 걸었어.” 친구들은 부러워서 “그 거물이 뭐라고 했는데”하니 그 중국인은 “그 분은 내게 ‘꺼져’라고 말씀하셨어”라고 했다.
역사상 가장 탁월한 군사적 천재 중 한 사람이며 “짐은 국가 제1의 하인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독일 프로이센의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대왕은 신병이 입대해 면담을 할 때 질문하는 순서가 있었다. 고향, 키, 부모 직업 순이었다. 그런데 어느 신병이 키가 너무 커 대왕은 질문 순서를 바꿔 ‘키’를 먼저 물었다. 이 신병은 미리 외운 순서대로 “베를린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부모의 직업은 무엇인가” “190㎝입니다”, “고향은 어디인가” “대장장이입니다”라는 문답이 오갔다. 이것은 독일인의 고지식함을 나타내는 유머러스한 실화이다.
미국 남북전쟁 후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애틀란타에서 어느 청년이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겠다는 소등을 부려 도로에는 많은 군중이 모여 이를 말리려 했다. 군중들이 “리 장군을 생각해”라고 하자 그 청년은 “리 장군이 누군데”라고 답했다. 그러자 군중들은 “빨리 뛰어내려! 이 양키!”라고 고함을 질렀다. 양키는 미국 남부인들이 북부인들을 경멸하며 부르는 비칭이며, 리 장군은 남부연합의 영웅이었다.
예부터 영국의 지도자와 국민들은 연설할 때나 대화할 때 유머를 사용한다. 이러한 전통을 승계한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 정치가가 링컨과 처칠이다. 이 두 사람은 유머의 달인이었다. 링컨은 어느 정적이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공격하자 “내가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면 이렇게 못 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올 리가 있겠소”라고 반박해 정적의 입을 다물게 했다.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라이벌인 더글러스가 “링컨은 술집의 바텐더 출신”이라고 공격하자 링컨은 “맞습니다. 제가 바텐더할 때 더글러스는 그 술집의 단골이었고 지금도 단골입니다”라고 응수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하원에서 어느 여성 의원이 “당신이 나의 남편이라면 당신의 커피에 독약을 타겠어요”라고 하자 처칠은 “당신이 나의 아내라면 나는 그 커피를 기꺼이 마시겠습니다”라고 대응했다.
미국 대통령 중 링컨, 루스벨트, 레이건은 최상위의 평가를 받는 대통령이면서 유머감각도 빼어났다. 루스벨트의 영부인 엘리노어는 활동적인 여성이었는데 어느 날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교도소를 방문했다. 루스벨트가 영부인을 찾자 비서관이 “교도소에 계십니다”라고 하자 루스벨트는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런데 혐의가 뭐죠”라고 물었다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암살범의 흉탄에 심장 주변을 맞아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실을 찾은 친구에게 “그 총알이 1㎝만 아래로 왔더라면 자네는 나를 만나려 지옥에 왔을 뻔했네”라고 말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정신은 균형과 유머이며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균형은 객관성에서 나오며 유머는 균형감각에서 나온다. 주관적이며 편협한 정신에서 유머는 나올 수 없다.
우습기는 하나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거나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 예가 루쉰의 ‘아Q정전’에 나오는 아Q의 정신승리법이다. 아Q는 밖에서 얻어맞고 돈까지 빼앗기고 집에 와서 승리의 비법을 고민하다 ‘정신승리법’을 발견한다. 그는 자기의 손으로 자기 뺨을 몇 대 때리고는 때린 것은 자기 손이기 때문에 자기가 때린 것이고 자기가 승리한 것이라고 자부한다. 이것은 유머가 아니고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정신승리법에서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합리화하는 궤변이 나오는 것이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 여러 가지 요소를 보아야 하지만 유머감각도 선택의 기준으로 참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능력이 있는 줄 알았는데 능력이 없는 경우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막상 지도자로서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머감각은 일상생활에서 미리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망할 경우가 별로 없을 것이다. 유머감각이 있다는 것은 균형감각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한국사에서 오성 이항복이 대표적 예이다. 관대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지도자가 국가나 후대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준다.
변호사 이재호
국제신문 〔세상읽기〕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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