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기 어렵다는 고사성어 촌초춘휘(寸草春暉)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 서기 751년~814년)는 46세에 뒤늦게 진사에 급제한 뒤 큰 벼슬에 오르지 못했다. 힘든 인생살이를 반영하듯 그의 시는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동정심이 한껏 배어 있다.
游子吟
慈母手中線 游子身上衣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인자하신 어머님 손에는 실 떠도는 이 몸의 옷을 떠날 때 촘촘히 꿰매어 주시고 돌아옴이 늦을까 걱정하셨네 누가 말했는가 한 치 풀의 마음으로써 어찌 봄날 같은 부모의 마음을 알리
맹교의 대표작 <유자음>에서 자애로운 어머니가 타향에 외출하는 아들의 옷을 정성껏 짓는 모습을 통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뜨거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이란 글귀에서 아들의 심정을 한 포기 풀 어머니 마음을 봄날의 햇볕에 비유했다.
자그마한 풀포기 하나 그를 길러준 봄날의 햇볕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라는 뜻으로 한 치 풀의 마음으로써 어찌 봄날 같은 부모의 마음을 알리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촌초춘휘(寸草春暉)이다.
촌초춘휘(寸草春暉)란 즉 한 포기 풀과 봄날의 햇볕이라 자그마한 한 포기 풀이 봄볕의 은혜에 보답하기 힘들다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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