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입을 열어 남에게 말하기는 어렵다 - 설중매(雪中梅)

박남량 narciso 2013. 10. 14. 09:40


입을 열어 남에게 말하기는 어렵다 - 설중매(雪中梅)




고려 말 송도에 설중매(雪中梅)라는 미모와 재주가 뛰어난 유명한 기생이 있었습니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뒤에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여러 신하들에게 위로의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신하들은 대개가 고려조에서 벼슬하던 신하들이었습니다.
기생(技生) 설중매(雪中梅)도 이 위로의 잔치에 불려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위로의 잔치에서 술기운이 오른 정승 하나가 설중매(雪中梅)를 붙들고 짖궂게 희롱을 했습니다.
「내 들으니 너는 아침에는 동쪽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잔다하니 오늘밤은 나와 같이 지냄이 어떠냐?」

그러자 설중매(雪中梅)는 서슴치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고명하신 대감의 말씀은 지당한 말씀입니다. 동쪽에서 밥을 먹고 서쪽에서 잠자는 기생과 왕씨도 섬기고 이씨도 섬기는 정승과는 좋은 짝이 되겠습니다.」

정승은 비록 취중이었지만 얼굴이 화끈거려 더 이상 말을 못했고 함께 한 여러 신하들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고 합니다.

말은 쉽지만 말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명심보감에 入山擒虎 易  開口告人 難 이란 말이 있습니다.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기는 쉬워도 입을 열어 남에게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말처럼 내뱉기 쉬운 것은 없습니다. 입만 열고 호홉을 적당히 조절하면 금새 말은 만들어집니다.

말은 입으로부터 뱉어지면서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말에는 지혜로운 말이 있고 바보스러운 말이 있을 것이고 생각한 말이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말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을 씨앗으로 말을 뱉었을 때는 사랑(愛)을 실어나르기도 하지만 독(毒)을 씨앗으로 하여 뱉어졌을 때는 악(惡)의 사자(使者)가 됩니다.

공자(孔子 BC 551-BC 479)도 한평생 선(善)을 행하여도 한마디 말의 잘못으로 이를 깨뜨리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말이란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과 설중매의 말에 대하여 삼척 여행길에서 얻은 우물과 두레박이라는 작은 책에 실린 부부간의 재치있는 이야기를 옮겨 함께 나눔을 가집니다.

퇴근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오늘 외식해요. 네?"
그러자 남편이 귀찮아서 갑자기 아내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사랑하는 제 아내에게 집에서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하옵소서."
아내는 할 수 없이 외식을 포기하고 집에서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좀 느긋해지자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과일이 좀 먹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
그러자 아내가 갑자기 남편에게 다가와 남편의 손을 덥석 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남편이 과일 같은 건 먹고 싶지 않게 해주시고 김치하나만으로 불평 없게 해주세요."

내가 남에게 좋게 하여야 남도 내게 좋게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善言暖於布帛 이란 말이 있습니다. 순자(荀子)의 말입니다. 좋은 말을 남에게 베푸는 것은 비단 옷을 입히는 것보다 더 따뜻하다는 뜻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는 시시비비는 거의 대부분 말에서 비롯됩니다. 자기가 뱉은 말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화살이란 걸 알게 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