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이경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박남량 narciso 2016. 11. 9. 10:06


우리 미술관 옛그림


이경윤(李慶胤 1545-1611)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이경윤(李慶胤 1545-1611)는 조선중기의 왕족 출신 화가입니다. 인조 때의 서출 왕족으로 동생 이영윤(李永胤) 또한 이름난 화인이었습니다. 특히 서자(庶子)인 허주(虛丹) 이징(李澄)은 도화서 화원으로 당대에 이름을 떨친 화가였습니다. 이경윤(李慶胤)이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찍부터 절파화풍(浙派畵風)의 대가 김시와 교류하면서 그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산수화를 비롯하여 영모화, 동물화 등도 즐겨 그렸으며 특히 산수인물화(山水人物畵)를 잘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산수인물화입니다. 산수인물화에는 낚시, 바둑, 음주, 탄금(彈琴), 초가집(草屋), 관폭(觀瀑), 취적(吹笛), 탁족(濯足) 등의 생활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고메한 인품의 한 선비가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동자의 모습입니다.  무심히 폭포를 바라보는 은일자(隱逸者)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선비가 웃옷을 풀어 헤치고  가슴을 훤하게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무릎 위까지 바지를 올린 다리를 꼬아, 흐르는 물가에 담그고 흔들고 있는 다리 때문에 물은 물결이 치고 머리 위로는 나뭇가지가 뻗어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천진난만한 얼굴의 어린 동자는 술병을 들고 있으며 선비는 그 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모습과 측은지심으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습니다.

선비들에게 탁족(濯足)은 더위를 식히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 창랑(滄浪)이라고 부르는 강이 있었습니다. 이 강은 일 년의 반은 흐린 물이 흐르고 나머지 반은 맑은 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강을 지나는 나그네들이 물이 맑을 땐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릴 때 발만 씻었습니다. 공자는 이 강물의 맑고 흐림에 빗대어 모든 것이 자기가 처신하기에 달렸으니 몸과 마음을 닦기에 힘쓰라고 가르쳤습니다.


탁족(濯足)이란 글자 그대로 발을 씻는다는 뜻인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관념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강과 계곡에서 濯足之遊(탁족지유)의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한 방법입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유월조(六月條)에 "三淸洞 ..... 南北溪澗 爲濯足之遊  삼청동 남북쪽 계곡에서 발씻기 놀이를 한다." 라는 기록이 있어 탁족(濯足)이 일부 특수 계층의 놀이가 아니라 당시 백성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여름 풍속이었습니다.


중국 고전인 초사(楚辭)에 어부와 굴원(屈原)의 대화의 마지막 부분에도 濯足之遊(탁족지유)의 글이 있습니다. 어부가(漁父歌) 또는 창랑가(滄浪歌)라 이름 지어 불렀다고 합니다.

"漁父莞爾而笑 鼓而去 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 不復與言(어부완이이소 고이거 가왈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纓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수거 불복여언) 어부가 미소를 지으며 노르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니,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오, 창랑이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라고 하면서 사라지니 다시 더불어 말을 하지 못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창랑가(滄浪歌)의 의미를 맹자(孟子)는  이루(離婁)에서 "淸斯濯纓 濁斯擢足矣 自取之也(청사탁영 탁사탁족의 자취지야)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이것은 물 스스로가 그런 사태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라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욕되게 한 뒤에라야 남이 그를 모욕하고, 가문은 반드시 그 자신들이 파괴한 뒤에야 남이 그 가문을 파괴하고 나라는 그 자신들이 망친 뒤에야 남이 그 나라를 토벌한다. 그러므로 하늘이 지은 재앙은 그래도 피할 수 있으나 자기가 지은 재앙은 모면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행복이나 불행은 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처신 방법과 인격 수양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풀이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