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박남량 narciso 2017. 11. 27. 18:28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말하는 자는 두렵지 않지만 스스로 어리석다고 말하는 자는 두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똑똑한 체하는 자들은 많아도 어리석은 체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합니다. 똑똑함의 쓸모는 알아도 어리석음의 쓸모는 잘 모르는 까닭입니다. 고려사(高麗史)에 나오는 예성강곡(禮成江曲)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고려와 송나라의 무역은 육로보다도 주로 뱃길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황해로 흘러드는 예성강 입구에는 벽란도라는 항구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중국의 송나라 상인뿐 아니라 일본을 비롯하여 멀리 아라비아 상인까지 자주 드나들며 교역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송나라 상인 하두강(賀頭綱)이라는 사람도 물자를 싣고 예성강에 흘러들었다가 예성강가에서 한 아리따운 부인을 발견하고는 자기 여자로 만들어야겠다고 흑심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혼인한 몸이었습니다.

바둑을 잘 두는 하두강(賀頭綱)은 여인의 남편에게 접근하여 내기바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연전연승이었습니다. 하두강(賀頭綱)이 바둑수를 속여서 짐짓 못 두는 체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기에서 계속 돈을 따자 남편은 입이 헤벌어졌습니다. 그것이 미끼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완전히 걸려들었다고 판단한 하두강(賀頭綱)이 일부러 열 받은 표정으로 말을 했습니다.

"이거 자꾸 지기만 하니 도저히 안 되겠소. 큰 거 한판으로 끝장을 봅시다."

이번에는 하두강(賀頭綱)의 배에 실린 모든 물건과 남편의 미인 아내를 두고 큰내기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보나마나였습니다. 남편은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자신의 멍청함을 뉘우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하두강(賀頭綱)은 아내를 싣고 떠나 버렸습니다. 아내를 싣고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남편은 애타는 심정으로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성강곡(禮成江曲)의 전편입니다.

그런데 아내를 실은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폭풍을 만났습니다. 사나운 풍랑을 만나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점을 쳐보니 남의 아내를 강제로 태운 것이 용왕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하두강(賀頭綱)은 부랴부랴 뱃머리를 돌려 아내를 돌려보냈습니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는 이런 이야기도 적혀있습니다. "世傳 婦人去時 粧束甚固 頭綱欲亂之不得 (세전 부인거시 압속심고 두강욕난지부득)  세상 전설에 의하면 부인이 하두강을 따라갈 때 몸을 단단히 조여서 두강이 음란한 짓을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했다." 남편과 재회한 아내가 감개무량하여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성강곡(禮成江曲)의 후편입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와 연대가 미상인 고려가요로, 전후 두 편으로 된 듯하나 가사의 내용은 전하지 않으며 제목과 내력만이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그 유래만 전하고 있는 예성강곡(禮成江曲)이라는 글입니다. 예성강곡(禮成江曲)에는 어리석음이 빚어낸 희비쌍곡선이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돈을 계속 잃기만 하는 송나라 상인은 남편이 보기에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어리석은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은 스스로 똑똑한 줄 알았지만 어리석었고, 송나나 상인은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였지만 꾀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뻐기는 자는 오히려 상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어 보인다고 방심하고 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가 있습니다. 법구경에 나오는 진리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면 그가 곧 슬기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를 슬기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어리석은 것이다."

지혜롭게 보이는 것보다 어리석게 보이는 일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자신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둔한 자는 화를 있는 대로 다 터뜨리지만 지혜로운 이는 화를 가만히 가라앉힌다."(잠언 29,11)
"미련한 자도 잠잠하면 지혜로워 보이고 입술을 닫고 있으면 슬기로워 보인다."(잠언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