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이 소경이요 귀머거리입니다
개령 지방의 송방 마을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밭을 갈다가 오래 된 돌부처 하나를 얻었는데 눈 코 입이 모두 없어질 정도로 닳았기에 그냥 밭둑에 내버려두었습니다.
이때 우연히 숨찬 병이 부인이 지나가다가 돌부처를 보고 절을 했더니 병이 나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그 돌부처는 영험이 있고 또 무슨 빛이 난다는 소문이 점차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자 오래도록 병으로 앓고 있던 사람, 나이는 많지만 아직 장가들지 못한 사람, 자기 집 종을 잃은 사람 등등 갖가지 어려움이 있는 이들이 찾아와서 여기에 빌기만 하면 이내 효험을 얻었습니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자 그곳에는 쌀과 포목, 돈, 향초, 꽃, 과실을 가지고 몰려드는 남녀들이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 스님이 찾아와 향을 올리는 일을 관장하며 거기에 기왓집을 짓고 머물면서 장차 큰 절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양반집 부녀들이 그 기와집에 와서 기도 드리고 개령현감 같은 사람마저 찾아와서 아들의 병이 낫기를 빌거나, 아들 두기를 빌기도 하였습니다.
금산군수 이인형이 이 말을 듣고 유생과 관리들을 보내 스님을 잡아오고 시주하러 온 사람들을 쫓아 버렸습니다. 벼슬을 사퇴하고 그곳에 내려와 살고 있던 문간공(文簡公) 김종직이 이를 듣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군수 이인형에게 하례하였습니다.
채마밭에 버려져 몇 해인지도 모르는데 / 미련하게 주먹처럼 생긴 돌에 무슨 영험 있으랴. / 처음에는 구걸하는 떠돌이 중 같더니 / 점점 돈 모으는 장사꾼이 되어가네. / 몇 집의 남녀들이 물들어가려는지 / 향초와 등불이 거리에 늘비하네. / 우리 군수 곧은 것이 분주땅의 원님 같아 / 요망함을 깨치고서 맑은 세상 만드리라.
그러자 당시 사람들은 이를 아름답게 여겨서 이렇게 칭송하였습니다.
"성스러운 왕조에야 비로소 영웅이 있는 줄 알겠다."
사람들은 처음에 돌부처를 외형만 보고 낡고 가치 없다고 여겨 방치해 두었습니다. 후에 그것이 가치 있다는 소문이 돌자 이를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사기꾼이 등장하고 한참 뒤에야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일깨워주는 지식인이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조 연산군 때의 역관 조신(曺伸)의 시화 잡록집인 자잘한 이야기나 사건을 듣고 기록하였다는 뜻으로 책이름이 된 소문쇄록(謏聞瑣錄)에 실린 글을 세상을 거꾸로 보는 관상쟁이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소문쇄록(謏聞瑣錄)의 이야기처럼 사물의 외형만 보고 그것의 가치를 속단하거나 아니면 풍문에 속아 맹목적으로 열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장자(莊子)는 정신의 몽매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찌 육체에만 귀머거리와 소경이 있겠는가? 우리의 정신에도 그것이 있다."
사람에게는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왜 소경이며 귀머거리라는 말일까요? 성경에서의 의미는 육체의 소리와 행하는 것을 듣고 볼 수 있지만 성령에 대해서는 소경이요 귀머거리라는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눈먼 이 백성을, 귀가 있어도 귀먹은 이자들을 나오게 하여라."(이사 43,8)<꽃사진: 금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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