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선물
피에트로 갈바니는 이탈리아 성악교사로 출발하였다. 가능성 있는 목소리를 뛰어난 목소리로 바꿔놓는 그의 능력으로 그 분야에서 거의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자기의 손으로 오페라를 흥행시켜보려고 오페라 두어 편을 직접 제작했으나 재정적인 실패로 이어지고 그는 전재산을 날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가난해도 피에트로 갈바니는 기운을 잃지 않고 박스트 가와 프리드맨 가의 모퉁이에서 발밑에 동냥그릇을 놓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기품있는 거지가 되었다.
태양은 찬란하게 빛나고 공기는 더할 수 없이 상쾌한 날이다. 버릴 고세트가 성탄절 준비를 위해 물건을 사러 외출하였다. 그녀는 여느 때와는 달리 기분이 무척 좋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박스터 가와 프리드맨 가의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추위를 무릅쓰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피에트로 갈바니에게 많은 돈을 적선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동냥그릇에 지갑에 든 동전을 몽땅 쏟아부었다. 동냥그릇에 떨어지는 요란한 동전소리를 들은 갈바니는 바이올린 연주를 중단하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옛 신사가 하듯이 모자를 벗어 들고 감사의 뜻으로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라치에! 몰테 그라치에!』
버릴 고세트는 스물세 살에 런던 오페라극장에서 가수로서 첫 공연을 가졌으며 그녀의 뛰어난 실력은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는 당시 장래가 촉망되는 가수로서 일류 오페라단의 총아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목소리를 잃어 버리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한창 아리아를 부르던 도중 목소리가 갈라져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가수생활은 끝난 것이다. 그녀는 음악계를 떠나 근처 대학에서 현대언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쇼핑을 마친 버릴 고세트는 아파트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거운 상자들을 잔뜩 안고 있었으며 몹시 지쳐있었다. 평소 피에트로 갈바니가 바이올린을 켜던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녀는 쇼핑꾸러미 하나를 떨어뜨렸다. 마침 물건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던 노음악가인 피에트로 갈바니가 그것을 보았다.
그는 몇 시간 전 많은 동전을 동냥그릇에 인자하게 떨어뜨려준 젊은 여성을 알아보았고 이미 양팔에 꾸러미들을 잔뜩 안은 그녀가 떨어진 꾸러미를 주울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노음악가는 그녀 옆으로 달려가 꾸러미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드리죠. 아가씨. 이렇게 많은 짐을 들고서는 도저히 집까지 갈 수 없을 겁니다. 제가 몇 개 들어다드리겠습니다. 저는 오늘 일이 모두 끝나 시간이 많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버릴 고세트는 생판 모르는 사람을 집까지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노인이었고 전혀 악의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택시를 잡을 상황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너무 지쳤고 혼자서 그 많은 짐을 들고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노음악가의 제의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가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밝혔지만 상대의 이름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버릴 고세트가 피에트로 갈바니의 이름을 알고 있기에는 너무 젊었고 그녀가 오페라계에서 명성을 날릴 때 쯤 그 유명한 성악교사는 이미 잊혀진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피에트로 갈바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얇은 외투만 입고 추위에 떠는 노인을 보면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따뜻한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며 집안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파트는 좁았지만 아늑했으며 그 비좁은 아파트의 대부분을 그랜드 피아노가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그녀가 도저히 단념할 수 없는 과거의 유물이었다. 그녀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작은 탁자에 찻잔을 놓을 때 피에트로 갈바니가 물었다.
『당신은 음악가이신가요?』
그녀는 당황하며 시선을 돌렸다.
『아니예요. 음악가는 아닙니다. 다만 옛날에 노래를 조금 불렀을 뿐입니다. 오페라를요. 하지만 목소리를 잃었어요.』
마지막 말은 가능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려 했다. 그러나 피에트로 갈바니는 그녀가 아직도 그 이야기에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덧붙였다.
『이미 아주 오래된 일인 걸요.』
오페라가수의 목소리에 전문가였던 피에트로 갈바니는 음악교사로서 오랜 경력을 쌓는 동안 그와 유사한 일을 여러 차례 보았다. 대개 그처럼 갑작스런 목소리의 고장은 노래를 지나치게 많이 부르거나 자신의 목소리에 맞지 않은 역할을 노래한 데서 온 결과였다. 아니면 그 두 가지가 합쳐졌을 수도 있다. 최고의 치료방법은 한두 해 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고 성대가 스스로 회복되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오랫동안 쉬고 나면 성대는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지는 법이다. 다만 목소리를 다시 찾은 뒤라도 버릴 고세트와 같은 가수는 이전에 목소리를 망친 원인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장기간 실력 있는 스승에게 지도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노음악가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었다. 그때 멋진 생각이 떠올랐다.
『성악교사였던 내가 이 매력적인 여성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면 어떨까?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정말 행복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노력을 할까? 』피에트로 갈바니는 말없이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영감을 내려달라고 기도했다. 노음악가가 떠날 채비를 하며 찻잔을 내려놓는데 불현 듯 영감이 떠올라 말했다.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나를 위해 노래를 한 곡 불러주지 않겠어요? 간단한 노래라도 좋습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저는 부를 수 없어요! 지금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저는 노래를...부를 수가 없어요!』
피에트로 갈바니는 참을성 있게 그녀에게 사정했다. 피에트로 갈바니는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고요한 밤'이라도 나와 함께 불러봅시다.』
그녀는 다시 거부했지만 피에트로 갈바니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의 강경한 태도에 피곤에 지친 그녀는 굴복하고 말았다. 노음악가가 먼저 바리톤으로 노래를 부르자, 그녀는 그를 따라 멜로디를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그녀는 자기가 콧노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2년만에 처음이었다.
호기심이 인 그녀는 아주 작은 목소리지만 과감하게 몇 소절을 따라 불러보았다. 다시 한 번 그녀는 자신이 정상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좀 더 크게 노래를 불렀다. 노음악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차츰 낮춰갔다. 노래가 끝날 무렵 그녀는 전성기 때의 목소리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정상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가 노래를 끝내기도 전에 피에트로 갈바니는 성량 있는 목소리를 요구하는 다른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피에트로 갈바니의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즐거워 보여 계속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더 좋아졌다. 세 번째, 네 번째 노래가 계속되었다. 아무도 피에트로 갈바니를 멈출 수 없었다. 그녀도 노래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확인할 기회가 찾아왔다. 피에트로 갈바니가 노래를 오페라의 간단한 아리아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용감하게 맞섰다. 피에트로 갈바니는 매우 조심스럽게 쉬운 곡에서 조금씩 어려운 곡으로 진행해 간 덕분에 버릴 고세트는 난이도가 높은 레퍼토리를 부르게 되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되찾았을 뿐만아니라 예전보다 훨씬 훌륭하게 노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지막 아리아를 끝냈을 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우러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갈바니 씨!』
피에트로 갈바니는 눈 가득히 장난기를 띠고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가씨. 오늘 오후에 당신이 그 많은 동전을 나에게 준 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당신이 다시 노래하게 만든 것뿐인걸요. 우리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거지였던 셈이죠.』
그 다음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버릴 고세트는 시대를 초월해 가장 위대한 오페라가수가 되었고 피에트로 갈바니는 그 후 약 20년 동안 그녀의 교사이자 친구로 함께했다. 인생을 마칠 때까지 그들은 수없이 서로를 도와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서로에게 필요한 거지 사이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서로에 대한 관대함이 그들의 인생을 거룩하게 만들어주었다.
닐 기유메트(Nil Guillemette)의 『A Lamp for My Feet(내 발의 등불)』에서 함께 나누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이 새 인생을 살기까지 서로가 주고받은 선물에 대해 전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몸인 신자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살다보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사랑과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사랑과 고마움을 마음만으로는 감사의 뜻을 표현하는 게 부족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바로 선물이다. 감사, 애정, 축하, 격려 등의 감정을 선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선물이다. 어떤 날에 서로 주고 받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건을 주는지는 다 다르다. 선물은 종종 물건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선물은 우리의 시간, 친절, 때로는 필요한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서로 주고 받는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꽃사진: 꽃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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