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야 되는 까닭을 아세요
디림쥐들은 울퉁불퉁한 바위 밑에 굴을 뚫고 지내면서 수북하게 자란 험한 풀숲에서 가시나무를 넘나들며 먹을 것을 구하였습니다. 재주가 좋은 놈은 음식을 얻었으나 재주가 모자란 놈은 굶주림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다람쥐가 강가의 절벽 위에서 나무를 타고 놀다가 자라들이 물고기를 몰아다 먹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맑은 물에 둥둥 떠서 한가롭게 활개치며 사는 자라가 매우 즐거워 보였습니다. 다람쥐는 생각하였습니다.
"저들은 갑옷을 입고 있는데도 거센 물결 위에서 능히 둥둥 떠다니는구나. 내 몸은 가벼울 뿐만 아니라 뛰어다니기도 잘 하니 어찌 저들보다 못할소냐?"
다람쥐는 펄쩍 뛰어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한 걸음도 채 가기 전에 큰 물결이 몰려와 다람쥐는 이리 휩쓸리고 저리 부딪히면서 금세 하류로 떠내려갔습니다. 다람쥐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오늘에야 즐겁게 노닐 수가 있게 되었으니, 이로써 죽음을 잊을 만하다."
그러나 이윽고 다람쥐의 눈은 휑뎅그레 떠져 닫히지 아니하고 입을 딱 벌어져 합해지지 않았으며, 배는 퉁퉁 불어서 물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가 다시 수면 위로 쑤욱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다람쥐들이 높은 나무 위에서 이를 보고 그 죽은 다람쥐가 즐거워서 그러는 줄 알고는, 앞을 다투어 펄쩍펄쩍 강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하여 다람쥐들은 하나같이 꼬리가 갈라져 나가고 살갗이 터지면서 자라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라들은 다람쥐떼를 맛있게 먹고는 물 위에 둥둥 떠서 침을 흘리며 다람쥐들이 다시 뛰어들기를 마냥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어부가 와서 통발과 그물도 치지 않고 맨손으로 자라를 잡아다가 볕에 말렸습니다.
장자(莊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대는 삵쾡이란 놈을 모르는가? 삵쾡이는 성나서 팔을 벌리고 달리는 수레바퀴에 뛰어들지만 자기가 견디지 못함을 모른다."
다람쥐는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남을 흉내내다가 죽음을 자초하였습니다.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가 결국은 죽음을 자초한다는 말입니다. 이 어찌 다람쥐나 삵쾡이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눈앞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제게 닥치는 위험을 모르고 있다가 마침내 큰 재난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분수에 맞으면 몸에 욕됨이 없고 기틀을 알면 마음 또한 스스로 한가롭다. 그렇게 이 세상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을 벗어난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과 분별력, 자신의 섬세함을 파악해야 하고, 자신의 용기를 시험해야 합니다. 자신의 깊이가 어떤지 알아보고 모든 일을 감당할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탐지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나 자신을 아는 것이 곧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성경의 <세상을 거꾸로 보는 관상쟁이/사람과책/1995>에서 인용하여 함께 합니다.<꽃사진: 페튜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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