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 와 장한가
장한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백거이. 백거이의 자는 낙천이다. 樂天知命故不憂 낙천지명고불우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얻은 것이란다.
백거이는 이백이 죽은 지 10 년 두보가 죽은 지 2 년 후에 태어났다. 가난한 관리 집안에 태어났으나 29 살 되던 해 진사에 급제하였고 32 살에 황제의 친시에 합격하였으며 그 무렵에 지은 장한가는 그의 최고 작품으로 평가된다.
장한가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소재로 백거이의 상상력과 문필력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주인공은 당의 황제요 상대역은 중국 4 대 미인 가운데 최고인 양귀비이다. 거기에 글을 쓴 사람이 천재시인 백거이 이고 보니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것 같다.
불타는 불륜의 사랑으로 인해 안록산의 난으로 나라가 기울고 그 책임을 물어 사랑하는 여인을 목 졸려 죽여야한 것도 지극히 가슴 저리는 스토리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현종이 일국의 황제로서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두고 여생을 고통과 회한 속에 마감했다는 결말도 아름답기만 하다.
장한가(長恨歌)
한나라 황제는 경국지색을 사모하셨건만, 용상에 오르신지 오래도록 찾아내지 못하셨다. 양씨 댁 아가씨 이제 다 자랐건만, 규중에 깊숙이 있으니 아는 사람 없었다. 하늘이 내린 아름다움만은 스스로도 못 버리는 법, 하루 아침 뽑혀서 천자님 곁에 모셨다. 눈동자 굴려 살짝 웃으면 온갖 미태 생겨나니, 6 궁의 미녀들은 모두 빛을 잃었다. 봄 추위에 내리신 화청궁 욕실의 목욕, 온천물은 희고 매끄러운 살결에 부드러웠다. 몸종의 부축으로 일어나니 힘없는 요염한 자태, 비로소 새로이 천자님의 사랑을 받을 때.
구름같은 머리칼, 꽃다운 얼굴, 황금 비녀, 부용꽃 방장에서 따뜻하게 봄밤을 지냈다. 봄밤은 너무나 짧군자, 해가 이미 높이 올랐구나. 이때부터 황제께서는 조회에 나오지 않으셨다.
비위를 맞추고 잔치에 모시느라 틈이 없었으니, 봄에는 봄놀이 따르고 밤에는 밤을 독차지 했다.
후궁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삼천 명- 삼천 몫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황금의 궁전에서 화장 마치고 기다리는 밤, 백옥의 누각에서 잔치 끝나면 피어나는 봄. 언니들과 오빠들도 모두 제후의 서열- 놀랍구나, 대문에도 후광이 비쳤다. 드디어 세상의 부모들로 하여금 아들 낳기보다는 딸 낳기를 더 귀중하다고 여기게 했다.
여산의 이궁은 높아라, 구름 속에 뾰족한데, 신선의 음악은 바람 따라 곳곳에 들렸다. 느린 가락, 조용한 춤에 엉겨드는 피리와 거문고- 황제는 온종일 보시고도 싫증을 모르셨다. 어양의 북소리 대지를 울리며 다가오니, 서역의 곡조는 놀라서 깨어졌다.
구중궁궐에 연기의 티끝이얼너나니, 수천의 수레와 말은 서남쪽으로 갔다. 비취 깃발은 흔들흔들 가다가 서다가, 서쪽으로 도정의 문을 나서기 백 리 남짓, 육군이 꿈쩍 않으니 어찌 할 수 없구나. 곱다란 아미 숙이고 말 앞에서 죽었구나!
꽃비녀 땅에 버려졌지만 집는 사람 없었다. 비취 깃털, 공작비녀, 또 옥비녀도, 황제는 얼굴 가리고 구해 주지 못하셨다. 돌아보는 얼굴에는피눈물이 섞여서 흘렀다. 누런 먼지 흩날리고 바람 썰렁썰렁, 높다란 잔도로 굽이굽이 검문관에 올랐다. 아미산 밑에는 다니는 사람 드물고, 빛 잃은 깃발에 햇볕도 바랬다.
서촉의 강물은 초록색, 서촉의 산은 감청색, 황제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생각에 잠기셨다. 행궁에서 보이는 달, 상심에 젖은 빛깔, 밤비에 들리는 방울, 애가 끊어질 소리,
천하의 정세가 일변하니 어가가 돌아섰다. 여기에 이르러 머뭇머뭇 나가지 못하니, 마외역 언덕 밑 진흙 속에 그 얼굴 간 데 없고 죽은 곳만 허무하구나! 황제와 신하는 서로 보며 모두 옷을 적셨다. 동쪽으로 도성의 문을 바라보며 힘없이 나갔다.
돌아오니 연못과 동산은 옛날과 같구나. 태액지의 부용꽃, 미앙궁의 버들잎, 부용꽃은 그 얼굴, 버들잎은 그 눈섶, 이를 보고 어떻게 눈물 아니 흘릴까? 봄바람에 복사꽃 피는 날 가을비에 오동잎 지는 때,
서궁과 남내에 가을 풀 우거졌다. 낙엽은 섬돌에 가득한데 단풍도 쓸지 않았구나. 이원의 제자, 하얀 머리 새롭다. 초방의 아감, 푸른 눈썹 늙었다.
저녁 전각에 반디 나니 생각은 쓸쓸하구나. 외로운 등잔을 돋우느라 잠 못 이루는구나. 종소리는 느릿느릿, 이제 밤이 길다. 은하수는 반짝반짝, 겨우 날이 샌다.
싸늘한 원앙 기와, 서리꽃 겹쳐 있다. 차가운 비취 이불, 누구와 함께 잘까? 아득하구나 삶과 죽음, 이별이 해를 넘기는데, 혼백은 아직 꿈에도 돌아오지 아니했다.
임공의 도사로 문안에 들어온 나그네, 정신력을 기울이면 혼백을 모셔 올 수 있다고, 천자님 뒤척뒤척 잠 못 이루는 상사에 감동하여 드디어 방사로 하여금 은근하게 찾도록 시켰다.
공중으로 솟아 대기를 타니 번개처럼 빠르구나. 하늘로 오르고 땅으로 들어가 두루 찾았다. 위로는 벽락까지, 아래로는 황천까지, 그 어디도 모두 망망할 뿐,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들리기를, 바다 위에 신선의 산이 있단다. 그곳은 아른아른 허공 가운데 있단다.
영롱한 누각에 오색 구름이 일어나는데, 그 가운데 얌전한 선녀들이 많다고, 가운데 한 사람 이름이 태진이라니, 눈 같은 살갗, 꽃다운 모습이라니, 기연가 미연가?
황금 대궐 서쪽 별당의 백옥 대문을 두드려, 마중나온 소옥이를 쌍성에게 알리도록, 한나라 황제의 사신이란 전갈을 듣자, 꽃무늬 흐드러진 방장 속에서 꿈은 놀라 깨었다.
옷깃을 여미며 베개를 밀치고 일어나 서성거리다가 진주 발 은 병풍을 하나하나 열고 나왔다. 구름 같은 머리칼 반 남아 처졌으니 새로 잠을 깼구나. 화관을 매만지지도 못하고 지대 아래 내렸구나.
바람에 선녀의 소맷자락 팔랑팔랑 나부끼니 그대로 무지기와 깃옷의 무용 같구나. 옥 같은 얼굴 쓸쓸한데 눈물은 줄곧- 봄비에 젖은 배꽃 한 가지.
- 생략 -
천상에선 비익조 되어지이다. 지상에선 연리지 되어지이다.
장구한 천지 끊일 때 있겠지만 이 한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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