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단발머리에 교룡(蛟龍)의 문신을 새겼다는 고사성어 단발문신(斷髮文身)

박남량 narciso 2017. 2. 2. 12:35



단발머리에 교룡(蛟龍)의 문신을 새겼다는 고사성어 단발문신(斷髮文身)



소주 여인네들의 정교한 자수 솜씨로 인해 소수(蘇繡)라는 견직물이 빛을 발했다. 이 소수(蘇繡)의 유래는 뜻밖에도 그 시초가 문신(文身)과 관계가 있다. 원래 지세(地勢)가 낮은 강남지방은 수재(水災)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수재(水災)를 양자강에 사는 교룡(蛟龍)의 행패로 생각했고 그 교룡(蛟龍)이 동료를 잡아먹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뱃전에 용머리와 용안을 붙여 교룡(蛟龍)을 피하고 머리는 잘라 묶지 않아 치렁거렸으며 몸에는 교룡(蛟龍)의 문신을 새겨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는 단발문신(斷髮文身)의 습속을 행했다.

훗날 주(周)나라 초기 태왕의 맏아들 태백(泰伯)과 둘째 중옹(仲雍)은 셋째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이 강남지방으로 내려와 수로를 정비하여 홍수를 태호로 끌어들였고 그 이후 교룡(蛟龍)의 행패는 사라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태백(泰伯)을 왕으로 추대했고 태백(泰伯)이 죽자 중옹(仲雍)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교룡(蛟龍)의 행패가 사라졌음에도 고통을 참으며 문신(文身)을 행하는 습속이 없어지지 않자 그 풍속을 없앨 방안을 장로들과 의논하였으나 특별한 해답을 찾지 못하다가 마침 옆에서 바느질을 하며 이야기를 듣던 중옹(仲雍)의 손녀 여홍이 바늘에 손가락을 찔렸는데 여홍은 문득 옷에 교룡(蛟龍)을 수(繡)놓아 문신(文身)을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백성들은 교룡(蛟龍)을 수(繡)놓은 옷을 입고 거리를 나섰고 나중에는 교룡(蛟龍)만을 수(繡)놓는 것에서 벗어나 물고기와 봉황, 화초와 벌레 등을 수(繡)놓아 갈수록 아름다워졌다.

장자(莊子) 내편(內篇) 소요유(逍遙遊)에도 단발문신(斷髮文身)의 이야기가 나온다.

宋人資章甫 適諸越(송인자장보 적제월) 越人斷髮文身(월인단발문신) 无所用之(무소용지) 堯治天下之民(요치천하지민) 平海內之政(평해내지정) 往見四子邈姑射之山(왕견사자막고사지산) 汾水之陽(분수지양) 窅然喪其天下焉(요연상기천하언)

송(宋)나라 사람이 갓이라는 장보(章甫)를 팔려고 월(越)나라에 갔다. 월(越)나라 사람들은 斷髮文身(단발문신)  단발머리에 문신을 하고 있어서 그것을 쓸 데가 없었다. 요(堯)나라는 천하의 백성을 다스려 대륙을 평정하고 네 명의 신인을 만나러 멀리 고사(姑射)에 있는 산에 갔다. 분수 강북에서 한스럽게도 자신이 다스리던 천하를 잊어 버리고 만 것이다.


장자(莊子) 내편(內篇) 소요유(逍遙遊)와 소수(蘇繡)라는 견직물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단발문신(斷髮文身)이다.

단발문신(斷髮文身)이란 단발머리에 교룡(蛟龍)의 문신을 새겼다는 뜻으로 머리를 단발하고 몸에 문신하는 것을 말하며,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머리는 잘라 묶지 않아 치렁거렸으며 몸에는 교룡(蛟龍)의 문신을 새겼다.
<꽃사진: 박태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