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를 칭찬하는 반면 장래가 무섭다는 의미를 가진 고사성어 후생가외(後生可畏)
한(漢)나라 영제(靈帝) 희평(憙平) 시절 조조(曹操 155-220)가 관직에 올랐다. 당시 과거라는 관리 등용시험이 아직 없던 시대여서 연줄에 의해서 등용되었다. 각 지방으로부터 효도를 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孝廉)을 1년에 1명씩 추천케 하여 낭(郎)에 임명하게 되어 있었다. 처치곤란한 망나니로 방탕한 자식이 패현의 효렴(孝廉)으로 추천된 것이다.
조조(曹操)가 낙양현의 현위(縣尉)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성문의 좌우에 굵은 떡갈나무 몽둥이를 세워 놓고는 성문의 출입에 관한 공안조례(公安條例)를 공고한 후 위반자가 생기면 성문에 세워 놓은 그 몽둥이로 위반자를 때려죽였다. 상대가 아무리 유명한 인물이거나 권력자의 자제 혹은 지방의 호족일지라도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
조조(曹操)의 엄정하기 짝이 없는 자세는 백성이나 병사들의지지를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조정의 고위관리들의 반감을 샀다. 고관들에 있어서 차츰 방해자가 되기 시작한 조조(曹操)는 낙양현에서 돈구현(頓丘縣)의 지사로 전출되었다.
돈구현(頓丘縣)의 지사가 된 다음에도 조조(曹操)는 여전히 엄정하고 신상필벌에 철저한 행정을 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성들 사이에 돈구의 젊은 현령은 능력이 있으며 공평하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이 풍문은 조정에도 전해졌다.
조조(曹操)는 다시 조정으로 소환되어서 천자(天子)의 자문역이며 조정의 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요직인 의랑(議郞)으로 발탁되었다. 젊은 나이에 이 지위에 오른 것은 장래 무엇이 될지 두렵기도 하지만 그의 실행력과 용기가 대단하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공자(孔子 BC551-BC479)가 이렇게 말했다.
"後生可畏(후생가외) 焉知來者之不女今也(언지래자지불여금야) 四十五十而無聞焉(사십오십이무문언) 斯亦不足畏也己矣(사역부족외야기의) 젊은이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뒤에 오는 사람이 지금 사람만 같지 못하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마흔 살 쉰 살이 되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
논어(論語)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후생가외(後生可畏)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란 후생(後生)은 뒤에 난 사람이란 뜻이므로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 또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젊은 사람을 말한다.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라는 말은 이제 자라나는 어린 사람이나 수양 과정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 두렵다는 말이다. 두렵다는 것은 무섭다는 것이 아니고 존경한다는 뜻이 있다. 이 말은 공자가 서른 살이나 아래인 안자의 재주와 덕을 칭찬하여 한 말로 논어에 실려 있다.<꽃사진: 달맞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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