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보는 내가 있습니다

박남량 narciso 2020. 12. 31. 17:16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보는 내가 있습니다



두 마리의 새가 한 나무에 앉아 있습니다. 똑 같은 깃에 똑같이 생겼지만 한 마리는 언젠가는 죽을 운명의 새이고 다른 한 마리는 불멸의 새입니다. 죽을 운명의 새는 나무의 아래쪽 가지에 앉아 있고, 불멸의 새는 맨 위쪽 가지에 앉아 있습니다.

아래쪽 가지의 새는 쉼 없이 재잘거리며 이 가지 저 가지에 달린 열매를 따 먹습니다. 열매가 쓰면 불행해하고, 달면 행복해합니다. 늘 부족함을 느껴 더 많은 열매를 원하며, 다른 새들이 먼저 따 먹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이 열매와 저 열매를 비교합니다.

위쪽 가지에 앉은 새는 먹지 않고 세상을 다만 바라볼 뿐입니다. 이 새에게는 아래쪽 새와 다르게 욕망도 배고픔도 없습니다. 좋음과 나쁨, 행복과 불행에 소란 피우지 않으며, 완전한 고요 속에 움직임이 없이 앉아 있습니다.

한 마리의 새는 세상에 묶여 있고, 다른 한 마리의 새는 일체의 것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한 마리의 새는 가지들 위를 뛰어다니며 분주히 사간을 쏟지만, 다른 한 마리의 새는 평화와 환희를 느낍니다. 아래쪽 가지의 새는 열매를 찾느라 바쁘지만, 위쪽 가지의 새는 존재 자체로 행복할 뿐 열매가 달든 쓰든 관심이 없습니다. 스스로 만족해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쓰디쓴 열매를 맛보고 괴로워하던 어느 날, 아래쪽 가지의 새는 위쪽 가지에 앉은 자기와 똑같이 생긴 새를 올려다봅니다.
“저 새는 뭐지? 나는 이렇게 분주하고 불행한데 왜 초연하지?”
이런 생각이 들자 그 새를 닮고 싶은 마음에 위쪽 가지를 향해 한 단계 올라갑니다. 그러나 이내 유혹에 못 이겨 또 다른 열매에 몰두합니다. 열매가 쓰면 몹시 괴로워하면서 위쪽의 평온한 새를 올려다보고는 또다시 한 단계 올라갑니다. 그렇지만 또 금방 잊고 습관처럼 열매에 탐닉합니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한 끝에 아래쪽 사는 새는 위쪽 새가 앉아 있는 맨 위쪽 가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 순간 모든 시야가 바뀌고, 자신이 본래 그 위쪽 새였음을 깨닫습니다. 자신들이 서로 다른 두 마리의 새가 아니라 오직 한 마리의 새였음을, 그리고 아래쪽 나뭇가지에서 달고 쓴 열매를 따 먹으며 기뻐하고 슬퍼하던 일들이 다 환영이고 꿈이었음을 자각합니다.

인도의 고대 철학서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우화입니다. 이 가지 저 가지 움직이는 새는 나의 마음이고, 위쪽 가지에 고요히 앉아 있는 새는 나의 참 자아입니다. 열매를 탐닉하는 새는 에고이며, 그것을 초연히 바라보는 새는 참 나입니다. 그 둘이 함께 앉아 있는 나무는 내 육체입니다. 세상 차원의 새는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끊임없이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고통의 열매를 맛보는 순간 그 기대가 헛된 것임을 깨닫고 위쪽 가지에 앉은 새에게 조금씩 다가갑니다. 아래쪽 새가 위쪽 가지의 새를 알아보는 순간, 고통으로부터의 자유가 시작됩니다. 유한한 자아가 무한한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 자아는 서서히 가까워져 마침내 하나가 됩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그 무한한 자아가 곧 자신이었음을 깨달아 완전한 평화에 이른다고 우파니샤드는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