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이야기
난초는 어느 특정한 한 종류의 식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난초과를 총칭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난이라고 한다. 난초의 매력은 향기이다. 난초의 향기 속에는 사람의 심흔을 자극하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며 정력을 샘솟게 하여 몸을 젊게 하는 묘약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난초는 중국에서 꽃문화와 정신적 가치가 부여되어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전파되어 난초가 향기로운 식물로 사랑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난초에 대한 상징적 관념은 세 나라가 공통적이다. 난초란 명칭은 그리스어 Orchis에서 유래되는데 난초의 구근이 고환과 비슷하기 때문이란다.
왕비의 궁전을 난전(蘭殿) 미인의 침실을 난방(蘭房)이라 하여 난초는 여성을 상징하여 명문의 귀녀에 비유된다. 서양에서도 꽃의 요염스러움과 몇몇 품종에서 여음과 비슷한 꽃받침 때문에 여성을 표상하고 호화로움을 상징한다.
난초는 우리의 속담에도 나오는데 난초꽃이 번창하면 그 집에 식구가 는다는 말이 있고 꿈에 난초가 대 위에 나면 자손이 번창하고 난초꽃이 피면 미인을 낳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리고 난초를 기르면 집안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난초그림을 집안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리고 난초를 꿈에 보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춘추 전국시대 정나라 임금 목공의 어머니가 난초를 꿈꾼 후에 목공을 낳았다고 하며 정몽주의 어머니는 잉태하였을 때 난초 화분을 안는 꿈을 꾸었다고 하여 정몽주를 몽란 또는 몽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난초는 잎은 잎대로 손색이 없고 꽃은 형태와 색깔과 향기마저도 맵시있고 우아하며 맑기 또한 이를 데 없는 꽃으로 시인과 묵객들의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공자는 난초가 깊은 산 속에서 나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향기가 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이병기 시인은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 꼬치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고 난초란 시조에서 읊고 있으며 정지용 시인은 난초잎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잎은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라고 난초란 시에서 읊고 있다.
강희안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난초에서는 풍격과 운치를 본받아야 한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난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호남 연해의 모든 산에서 나는 것은 품종이 아름답다고 자생란을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에서 난의 육종에 최초로 성공한 사람은 영친왕으로 창경과 창방의 두 품종을 개발했다.
난초에 대한 전설로 성의 문지기가 이 꽃으로 공주의 병을 낫게 하였다는 순수한 사랑 난초의 이야기가 있으며 지리산의 산신인 성모신인 마야고가 찢어서 버린 옷의 실오라기들이 꽃이 되었다는 풍란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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