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그림자 놀이가 건조한 삶에 생기를 얻게 하지 않을까요(菊影詩序)

박남량 narciso 2016. 7. 27. 11:19


그림자 놀이가 건조한 삶에 생기를 얻게 하지 않을까요(菊影詩序)



사람들은 국화의 매운 마음과 향기를 사랑합니다. 국화의 뛰어난 점 네 가지가 있는데 늦게 피고, 오래 견디고, 향기롭고, 고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면서도 싸늘하지 않은 것입니다. 국화에 대한 낭만적인 풍류가 잘 나타나 있는 다산 정약용의 국영시서(菊影詩序)입니다. 그는 국화를 촛불 앞에 놓고 벽에 나타난 국화 그림자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벽에 나타난 그림자 가운데 가까운 그림자는 꽃과 잎이 서로 어울리고 가지와 곁가지가 정연하여 마치 묵화를 펼쳐 놓은 것 같고 그림자는 너울대고 어른거리며 춤추듯 하늘거렸습니다.

국영시서(菊影詩序)

국화는 여러 꽃 가운데 특히 빼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늦게야 꽃을 피우는 것이 한가지이고, 오래도록 견디는 것이 한가지이며, 향기로운 것이 한가지이고, 어여쁘지만 요염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이 한가지이다.

세상에서 국화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스스로 국화의 운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 네 가지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이 네 가지 외에 또 다만 등불 앞의 그림자를 꼽는다.

매일 밤 이를 위해 방의 벽면을 치우고 등잔 받침과 등잔을 차려 놓고 가만히 그 가운데 앉아서 혼자 즐기곤 했다. 하루는 남고(南皐) 윤이서(尹彛敍)에게 들렀다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 자네가 우리 집에 자면서 나와 함께 국화를 보는 것이 어떻겠나?”

윤이서는,

“국화가 비록 아름답다고는 하나 어찌 밤중에 볼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며 아프다고 사양하였다. 내가,

“어쨌든 가보기나 하세.”

하며 억지로 청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었다. 짐짓 동자를 시켜 등잔을 잡고 꽃 한 송이에 바싹 갖다 대게 하고는 윤이서를 당겨서 이를 보게 하며 말했다.

“기이하지 않은가?”

윤이서가 한참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자네의 말이 더 이상하군. 나는 아무리 봐도 기이한 걸 모르겠는걸.”

내가 말했다.

“자네 말이 옳아.”

조금 있다가 동자를 시켜 법대로 하게 하였다. 이번에는 옷걸이와 책상 등 여러 가지 방안에 있던 산만한 물건들을 치우고, 국화의 위치를 정돈하여 벽에서 약간 떨어지게 하였다. 그리고 등잔도 꼭 알맞은 위치에 놓아두고서 불을 밝혔다.

그러자 기이한 무늬와 희한한 형상이 갑자기 벽에 가득 차 오는 것이었다. 가까운 것은 꽃과 잎이 엇갈려 있고 가지와 줄기가 또렷하고 가지런한 것이 마치 수묵화를 그려놓은 것만 같았다. 그 다음 조금 떨어진 것은 너울대고 어른대는 그림자가 춤추듯 하늘거리는 것이 마치 동산에 달이 떠올라 뜨락의 나뭇가지가 서쪽 담장에 일렁이는 듯하였다. 먼 것은 흐릿하고 모호해서 마치 구름 노을이 엷게 깔린 것만 같고, 사라질 듯 여울지는 것은 파도가 넘쳐흐르는 듯해서, 황홀하고도 비슷한 것을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이에 윤이서가 즐거워 크게 소리 지르며 뛸 듯이 기뻐하다가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며 말했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천하의 뛰어난 광경일세 그려.”

한참을 그러다 흥분이 가라앉자 술을 내오게 하였다. 술이 거나해지자 서로 시를 지으면서 즐겼다. 이때 주신(舟臣) 이유수(李儒修), 혜보(徯父) 한치응(韓致応), 무구(无咎) 윤지눌(尹持訥) 등도 또한 같이 모였다.


국화꽃으로 그림자 놀이를 하며 벗들간에 즐겁게 노니는 광경을 묘사한 다산 정약용의 국영시서(菊影詩序)입니다. 아닌 밤중에 웬 국화타령이냐며 타박하는 벗을 억지로 집으로 끌고 와서는 꽃 한 송이를 등잔 앞에 갖다 대고 그림자를 보라고 합니다. '고작 이깟것 보라고 나를 청했더란 말인가? 그림자가 기이한 게 아니라 자네 하는 짓이 기이하네.' 라며 핀잔 섞인 말을 내뱉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를 하고 등잔불을 밝힙니다. 기이한 무늬와 희한한 형상이 벽을 가득 채웁니다. 꽃과 잎 그리고 가지와 줄기는 마치 묵화를 그려놓은 것 같았습니다. 조금 먼 그림자는 불꽃을 따라 흔들리며 달빛에 일렁이는 나무의 그림자를 만듭니다. 노을인지 구름인지 사라질 듯 파도가 되어 황홀할 지경으로 만듭니다. 투덜대던 벗은 무릎을 치며 놀라워 합니다.<꽃사진: 기생초>

菊於諸花之中。其殊絶有四。晚榮其一也。耐久其一也。芳其一也。豔而不冶。潔而不涼其一也。世之號愛菊而自命以知菊之趣者。不出此四者之外。余於四者之外。又特取其燭前之影。每夜爲之掃墻壁治檠釭。而蕭然坐其中以自娛。一日過南臯尹彝敍而語之曰。今夕子其宿我。與我觀菊。彝敍曰菊雖佳。惡得夜觀哉。辭以疾。余曰但觀。固請與之歸。至夕謬使童子持燭。逼之於一花。引南臯觀之曰不奇異乎。南臯熟視曰。異哉。子之言也。吾斯之莫之知有奇異也。余曰然。有頃令童子如法。於是除衣架書榥諸散漫參差之物。整菊之位置而令離壁。有間安燭於宜燭之處而明之。於是奇紋異形。倏焉滿壁。其近者花葉交加。枝條森整。若墨畫之張焉。其次婆娑彷彿舞弄纖襹。若月出東嶺。而庭柯之在西墻也。其遠者漫漶模糊。如雲霞之細薄。滅沒瀅濙。若波濤之瀰?
。閃忽疑似。莫可名狀。於是彝敍謼然大叫。踊躍欣動。以手擊膝而歎曰。奇哉異哉。天下之絶勝也。叫旣定命酒。酒旣酣。相與賦詩爲樂。時舟臣,徯父,无咎亦會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