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한 여행자가 옆 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당나귀를 빌렸습니다. 여행자는 당나귀에 짐을 한가득 실었습니다. 여행 채비를 마치고 길을 나서는데 당나귀 주인이 따라나왔습니다.
"나도 그 마을에 갈 일이 있으니 동행합시다. 당나귀도 내게 길이 들어 있으니 다루기 수월할 것이오."
그렇게 해서 당나귀 주인도 그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태양이 너무 강렬한 대낮에 그들은 잠시 쉬기 위해 멈추었습니다. 여행자는 당나귀가 만들어 낸 그림자 그늘에 앉아 태양빛을 피했습니다. 그늘은 고작 한 사람 정도만 앉을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당나귀 주인이 말했습니다.
"일어나시오. 내가 그 자리에 앉아야겠소. 당신은 당나귀를 빌린 거지. 그림자를 빌린 건 아니잖소."
당나귀 주인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여행자가 논박을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군. 당나귀를 빌렸을 땐 그 그림자까지 포함되는 거 아니요?"
당나귀 주인이 다시 되받아쳤습니다.
"이 당나귀는 본래 주인에게 충성하게 되어 있소. 내가 시키지 않는 일은 해선 안 된다구."
"무슨 말이오. 빌린 순간부터 이 당나귀는 내 것이오. 당신이 여기 따라오지 않았다면 그늘엔 당연히 나 혼자 앉아 있었을 것이고..."
논쟁은 점점 더 격력해졌습니다. 마침내 여행자와 당나귀 주인은 흙먼지 날리는 뙤약볕 아래에서 멱살을 잡고 뒹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계속 논쟁을 하는 동안 당나귀는 멀리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림자를 두고 싸우느라 우리는 종종 그 실체를 잃어 버리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추한 꼴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삶의 중심에다 우리 자신만을 올려놓음으로써 영원한 것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 버립니다. 세속성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맞추느라 자기의 판단력을 잃어 버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꽃사진: 한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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