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국의 멸망과 궁예
후삼국시대 국호를 태봉이라
하고
연호를 수덕만세라 할 때
궁예는 큰 세력을 갖게
되었으므로
이젠 불제자가 되기 위해
자칭 미륵불이라
하였다.
그는 어려서 애꾸눈이 되어
항상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일국을 호령하는 왕이
되었으나
애꾸눈에 대한 마음의
상처는
더욱 심해만
갔으며
이러한
심정을 달래기
위하여
남은 여생을 불교에 의지하려
하였다.
자칭 미륵불인 왕은 머리에
금관을
쓰고
방포를 걸치고
다녔으며
맏아들은 청광보살
끝아들을 신광보살이라
칭하여
불제자 가족처럼
만들었다.
궁예는 자기가 친히 불경 20
권을
만들었는데 당시의 승려
석총이
이것은 불경이 아니라
사설괴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하자
노하여 석총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때부터 성질이 더욱
포악해졌으며
남을 믿지 못하고 시기하는 마음만
늘었다.
어느 날 왕후는 왕의 이같은
행동을
염려하여 간하였으나
허사였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 간통을 하지
않았느냐
하면서 의심을 받게
되었다.
부인은 부드러운 말로
대하였으나
궁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다고 하면서
다구쳤다.
그래도 왕후는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왕의 마음을 달래려
하였으나
왕의 포악한 본성이 폭발하여
왕후를
철장으로 내리치고 당근질로 몸을
지지고
음부까지 파열하는 등 미치광이처럼
날뛰었다.
보다 못한 아들 청광보살과
신광보살이
만류를 하자 아들도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타살하고
말았다.
이후부터 왕의 행동은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해지기만
하였다.
군신들은
이대로 두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덕망이 높은 왕건을
추대하니
궁예는 도망하여 부양까지 가다가 도중에서
피살되고 말았다. 이로써 태봉국의 영화는
한낱 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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