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치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다는 고사성어 불편불의(不偏不倚)
중용(中庸)에는 중용이 없다. 우리는 책 이름을 들으면 그 안에 이름에 어울리는 내용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용은 그렇지 않다. 중용에는 중용이라는 개념이 자주 쓰이지 않을 뿐 아니라 중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풀이한 내용이 없다. 그렇다 보니 중용을 읽고 나더라도 중용이 뭔지 분명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주희의 주석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중용의 의미를 파악하는 나침판을 가진 것처럼 든든하다.
中者(중자), 不偏不倚(불편불의) 無過不及之名(무과불급지명) 平常也(평상야)
중(중정)은 치우치지도 기울어지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이름이다. 용은 늘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주희(朱熹 1130-1200)는 남송 시대를 살면서 북송 시대의 선배들을 자신의 스승으로 생각했다. 이들을 북송오자(北宋五子)라고 부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돈이, 장재, 소옹과 함께 이정 형제, 즉 정이(동생)와 정호(형)를 가리킨다. 주희는 북송오자의 지적 모험을 수용하고 자신의 열정적인 분투를 종합하여 새로운 유학을 정립했던 것이다.
주희의 주석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불편불의(不偏不倚)이다.
불편불의(不偏不倚)란 치우치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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