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스럽고도 용맹한 충무공 정충신
조선시대
무관인 정충신은
임진왜란시
광주목사 권율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어느 날 권율 장군의 장계를
가지고
의주
행제소에 있는 이항복을
찾아갔다.
이항복은 정충신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
보고는
학문과 무예를 닦으라고
권유했다.
이항복은 정충신을 집으로
데려가
사서까지 가르쳤고 정충신은 그해
가을
무과에 급제했다.
훗날 정충신은 이항복이 유배를 가자
함께 따라갈 정도로 아버지처럼
모셨다.
이항복이 죽은
뒤에도
정충신은 3년 동안 상주처럼 생활했다.
정충신이 평안병사로 있을
때였다.
청나라와 우호조약을 맺어야 하는데
청나라가
잔혹하고
사나운 오랑캐라고 소문이 나 있어서
사신으로 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정충신이 자진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청 태조는 조선 사신의 기를 완전히 꺽어놓기
위해 오만한 태도로 정충신을
맞았다.
「너희 나라에 아무리 사람이
없기로서니
너같이 작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단
말이냐?」
「조선에서는 예의를 갖추는 나라에는
대인을
사신으로 보내지만 힘만 믿고 예의가
없는
나라에는 소인을 사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청
태조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다시
물었다.
「조선에서는 나를 일러 도적이라고
한다던데
내가
무엇을 훔쳤다고 그렇게
말하느냐?」
정충신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천하를 훔치는 것보다 더 큰
도적이
어디 있다고 그리
말씀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청 태조는
정충신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껄껄
웃었다.
그리고 그를 정중히 상석으로 모셔
환대했다.
현재 금남군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진충사에 장군의 유품이 보존되어
있다.
정충신의 출생담도 영웅출생설화로 전해져 오는데
정충신의 아버지는 광주 향청의
좌수였는데
어느날 밤 무등산이 갈라지며 청룡이
뛰어나와
자기에게 달려드는 꿈을 꾸어
깨어났으나
꿈이 괴이하다 생각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자
산이 갈라지고 백호가 달려 나와 품에
안겼다.
그는
놀라 일어나 뜰을
배회하다가
부엌에서 잠든 식비(食婢)를 보고 마음이
동하여
합환을 하였는데 이 식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천문(天文),지리(地理), 복서(卜筮), 의술(醫術) 등
다방면에 걸쳐 정통했고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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