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하라 그리고 터득하라 그럴려면 흉내짓을 말아야 합니다
춘추시대 초기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대청마루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대청마루 아래에서는 윤편(輪扁)이란 사람이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자면 주위가 조용해야 하고 수레바퀴를 만들자면 주위가 시끄럽기 마련입니다. 위에서 환공(桓公)이 책을 읽고 읽음에도 불구하고 윤편(輪扁)은 아랑곳 않고 톱질을 하고 끌질을 하고 망치질을 하다가 끌과 망치를 놓고 대청마루 위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전하께서 읽으시는 건 무슨 말을 쓴 책입니까?"
"성인의 말씀이지."
"그 성인이 지금 살아있습니까?"
"벌써 돌아가셨지."
"그러시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네요."
환공(桓公)은 버럭 화를 내면서 수레바퀴를 만드는 목수 따위가 어찌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시비를 거느냐며 연유를 밝히라면서 만일 이치에 맞으면 용서를 하겠지만 당치 않을 땐 죽여 버리겠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윤편(輪扁)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제가 평소에 하고 잇는 일의 경험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를 만들 때 너무 깎으면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해서 바퀴살을 박을 수가 없습니다. 더 깎지도 않고 덜 깎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감각으로 터득해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으니 거기에 비밀이 있습니다만 그 비밀을 제 자식에게 말로 해줄 수 없고 제 자식은 말로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이 넘도록 수레바퀴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도 전해줄 수 없는 것과 함께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니 읽고 계신 것은 찌꺼기란 것입니다."
桓公讀書於堂上(황공독서어당상)/輪扁斲輪於堂下(윤편착륜어당하)/釋椎鑿而上(석주창이상) 問桓公曰(문환공왈)/敢問公之所讀爲何言邪(감문공지소독위하언야)/公曰(공왈)/聖人之言也(성인지언야) 曰(왈)/聖人在乎(성인재호) 公曰(공왈)/已死矣(이사의) 曰(왈)/然則君之所讀者(연즉군지소독자)/古人之糟粕已夫(고인지조박이부) 桓公曰(환공왈)/有說則可(유설즉가) 無說則死(무설즉사)/輪扁曰(윤편왈)/臣也(신야) 以臣之事觀之(이신지사관지)/斲輪徐則甘而不固(착윤서즉감이불고)/疾則苦而不入(직즉고이불불입)/不徐不疾(불서부질)/得之於手(득지어수)/而應於心(이응어심)/口不能言(구불능언)/有數存焉於其間(유수존언어기간)/臣不能以喩臣之子(신불능이유신지자)/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신지자역불능수지어신)/是以行年七十而老斲輪(시이행년칠십이로착륜)/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고지인여기불가전야사의)/然則君之所讀者(연즉군지소독자)/古人之糟粕已夫(고인지조박이부)
성인의 말씀을 듣고 성인을 배운다니 턱없는 일이라고 무안을 준 윤편(輪扁)을 환공(桓公)이 당치않다고 죽일 수야 없었을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만들면서 평생 터득한 체험이 환공(桓公)이 읽고 있었던 성인의 말씀보다 도(道)에 가까울 수 있음을 알아 주었을까요? 장자(莊子) 천도편(天道篇)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글은 말의 참뜻을 담지 못하고 말은 마음의 참뜻을 담지 못합니다. 환공(桓公)과 윤편(輪扁)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이 마음으로 터득한 비결은 아무리 많은 책을 읽더라도 그 핵심은 알 수가 없습니다. 장자(莊子)는 도(道)를 믿으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그저 자연대로 하라 할 뿐입니다. '자연대로 하라.' 이는 배우지 말고 스스로 체험하라는 것과 같습니다.<꽃사진: 트리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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