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흥선 대원군의 <석란도(石蘭圖)>

박남량 narciso 2017. 2. 3. 10:47


우리 미술관 옛그림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 )  <석란도(石蘭圖)>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은 고종의 아버지로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강력한 개혁정치를 편 인물입니다. 그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겪었는데 정치가로서 보다는 난초그림을 잘 그린 묵란화가(墨蘭畵家)로서 더 빛나는 이름을 남겼습니다.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난초 그림은 귀인의 난초라 불리며 너도 나도 탐을 냈습니다. 심지어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그림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을 정도입니다.


이 그림은 흥선 대원군(興宣 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이 만 71살 때인 1891년 그린 열두 폭 묵란도(墨蘭圖) 중 한 폭입니다. 각 폭에는 다양한 괴석과 난초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난초잎은 뿌리에서 촘춤히 자라나 위로 한껏 기세를 뿜으며 부드럽게 퍼지게 표현하였습니다.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난초는 대개 많은 수의 잎이 한 포기를 이루고 난엽(蘭葉) 하나하나가 가늘고 깁니다. 특히 잎의 밑부분은 굵게 시작하여 몇 번의 변화를 거쳐 끝에 가서는 예리한 칼날같이 마치 그의 날카로운 성품을 반영하듯 곧고 힘차게 뻗어나간 것이 특징입니다. 화제(畵題)에 석파 자신이 회혼(回婚)을 맞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하응(李昰應)이 대원군(大院君)이 되기 전에는 매우 불우한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는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입니다. 그들은 왕족 중에서 똑똑한 인물이 있으면 죄를 뒤집어씌워 없애 버리기도 했습니다.  이하응(李昰應)은 그들의 횡포를 벗어나기 위해 거짓 난봉꾼 행세를 합니다. 걸핏하면 시장의 장사치들이 무뢰배들과 어울려 투전을 벌이기도 하고 때론 술에 취해 주정뱅이 흉내를 냈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난초를 친 그림을 팔아 술집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또 잔칫집이라면 빼놓지 않고 찾아가 공짜 술을 얻어 먹고 높은 사람에게 굽실거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상갓집 개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고종이 임금에 오르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이 어린 아들을 대신해 강력한 왕권을 행사합니다. 그와 더불어 그의 난초 그림도 귀인의 난초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