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나옹(懶翁) 이정(李禎)의 <산수도(山水圖)>

박남량 narciso 2017. 8. 9. 14:50


우리 미술관 옛그림

나옹(懶翁) 이정(李禎 1578-1607) <산수도(山水圖)>



나옹(懶翁) 이정(李禎 1578-1607)은 궁중화원으로 봉직한 아버지와 형제들이 있어 전통적인 화원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불과 30세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정(李禎)은 그의 어머니가 횡금빛 눈부신 금신나한(金身羅漢)이 품으로 뛰어들면서 "너희 집 삼대의 네 사람이 모두 부처님을 잘 그려, 그 그림이 수천 장이 나 된다. 그래서 내가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너의 자식이 되어 보답하러 왔다."고 이야기하는 태몽을 꾸고 낳았다는 뛰어난 화가였습니다.

이정(李禎 1578-1607)의 <산수도(山水圖)>에는 이상하게 그림 속에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절벽에 시든 풀, 강변에 성근 대마누 몇 그루에 둘러싸인 집 한 채, 멀리 강변엔 물결도 없고, 번지는 먹빛으로 원경(遠景)이 지워집니다. 쓸쓸한 광경입니다. 절벽 위로 난 소롯길로 나무 하고 돌아오는 목동아이는 무엇을 보고 가는 걸까요?

허균(許筠 1569-1618)이 이정(李禎)을 위해 지어준 애사에 보면 그는 평양성 칠성문 밖 선연동(嬋娟洞)에 묻혔다고 했습니다. 선연동(嬋娟洞)은 평양 기생들의 공동묘지입니다. 이는 그가 평양에서 기생집에 얹혀 그림을 그려주며 살았음을 뜻합니다. 부처님의 뜻으로 금신나한(金身羅漢)이 환생한 몸을 받아 이 세상에 나온 이정(李禎)은 허균(許筠)이 애사에서 말한 대로 "비록 가난하여 남에게 얻어먹고 지냈으나 의리가 아니면 지푸라기 하나라도 취하지 않았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권력이 세상을 뒤흔드는 자라도 깨끗이 여기지 않고 훌쩍 떠나기를 마치 자기 몸을 더럽힐 것 같이 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평양 기생에게 얹혀 술에 절은 청춘을 탕진하다 마침내 그 치마폭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