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아래서
글 / 이 해 인
세월이 갈수록
당신과 함께 있으면
맑고 편안합니다.
태풍 불어 불안했던 마음도
이내 안정을 찾습니다.
유별나지 않은 수수함
웬만한 바람에도 끄덕 없는 한결같음
사계절 내내 푸른 모습을 잃지 않는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권태를 모르는
그 의연함과 싱싱함을 사랑합니다.
수 십 년을 솔숲에서 살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머무는 방을 <솔숲 흰 구름 방>으로
먼 데 사는 이에게 보내는 소식지를
<솔방울 솔바람>이라고 이름 붙였지요.
송미(松美) 송실(松實) 송이(松伊)
소나무 송 자가 들어가는 이름만 보아도
얼마나 반가운지요.
매일매일 당신이 떨어뜨리는
솔방울을 줍습니다.
까닭없이 마음이 흔들릴 때는
솔방울을 꼭 쥐고
단단한 첫 결심을 새롭힙니다.
새로운 감격으로 솔방울을 줍듯이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면서
뾰족한 솔잎처럼 예리한 직관력을
조금씩 키워가면서 행복합니다.
내 삶의 길에는 이제
송진 향기가 가득합니다.
끈적거리는 사랑의 괴로움도
자꾸 씹으면 제 맛이 난다고
당신이 일러주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바다를 보며
마음을 넓히라고 했지요?
뿌리 깊은 나무처럼
겸손하게 끈기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사는 법을
배우라고 했지요?
눈부신 햇살아래
송화가루 날리는
솔 숲길을 걸으며
황홀했던 시간들
솔바람 타고 오는
신의 음성을
거기서 들었습니다.
그 분은 내게 송화가루처럼
노랗게 부서지는 사랑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했음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나보다는 오래 사실 당신에게
마음 놓고 많은 이야기를
쏟아놓았습니다.
나를 키워주는 친구로
스승으로 연인으로
당신은 나에게
별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평범한 것에 감추어진 보화를
먼저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당신에게 어떻게 감사할까요?
늘 변함없이 곁에서
힘이 되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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