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목 련 진 다
글 / 김선우
이상하다,
계곡을 몰아쳐오는 눈보라
저 눈꽃떼를 어디서 만났던가
꽃으로 오기 전
네가 눈보라였다면 나는
무엇이었나
청명한 봄 한나절
돌연 단전 밑이
서늘해지고
내장을
따라 들어선 계곡에
꽃, 잎새도 없이 만개한 적멸보궁
얼음 녹아 아지랑이
흐르는데
왜
너는 그토록 서늘한 미소로 흔들리는지
네가 웃는 자리마다 조금씩 금이 가며
계곡의 뿌리가
시큰하다
독은 독으로 멸한다는데
동토를 녹인건 열망의
독이었나
거꾸로
흐르는 눈보라의 꿈
사월 아침마다
목련꽃 져버릴까
두려웠더니
제
살 으깨며 번지는 석양 아래
눈보라여, 너는 자결을 준비했구나
뒤란에 나부끼던 무명 타래같이
새벽부터 곱게 몸단장 끝냈구나
꽃으로 오기 전 너는 무엇이었나
거꾸로 선 폭포였나 진흙창 뒹굴던 놋반지엿나
내 독은 아직 사타구니 뜨거운 희망이라서
절망을 멸하러 오는 절망의
맨얼굴을 볼 수 없다 네 발목을 잡을 수
없다
김선우(1970 - )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첫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첫 산문집물 밑에 달이 열릴 때.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