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곁눈으로 바라본다는 고사성어 측목이시(側目而視)

박남량 narciso 2016. 10. 19. 15:21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곁눈으로 바라본다는 고사성어 측목이시(側目而視)



한(漢) 경제(景帝) 때 시경(詩經)에 정통한 제나라 사람 원고생(轅固生)은 크게 이름을 떨치고 박사에 봉해졌다. 여기에서 생(生)은 선생의 뜻으로 존경을 의미하는 말이다.

노자(老子)를 좋아했던 두태후(竇太后)는 원고생(轅固生)을 불러 이에 대한 감상을 이햐기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원고생(轅固生)은이렇게 대답했다.

"그저 보통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두태후(竇太后)가 크게 노해 말했습니다.

"그것을 어찌 죄인을 관리하는 것 같은 유가(儒家)의 시서(詩書)와 비교하겠는가?"

두태후(竇太后)는 원고생(轅固生)을 가축우리에 가두고 멧돼지를 죽이라고 했다. 경제(景帝)는 비록 원고생(轅固生)이 태후를 화나게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에게 날카로운 칼 한 자루를 주었다. 원고생(轅固生)은 가축우리 안에서 정말로 멧돼지를 죽였다. 정확히 심장 중심을 찌르자 멧돼지가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그래서 태후도 더는 그의 죄를 물을 수 없어 그만두었다.

얼마 후 경제(景帝)는 원고생(轅固生)이 청령결백하다고 판단하고 그를 청하왕(淸河王) 태부(太傅)에 봉했다. 그러고 나서 한참이 지나 원고생(轅固生)은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한(漢) 무제(武帝)가 즉위했을 때 원고생(轅固生)은 다시 부름을 받고 입조했다. 원고생(轅固生)이 입조했을 당시 설읍(薛邑) 출신의 공손홍(公孫弘)도 초빙되었는데 그는 감히 원고생(轅固生)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때 원고생(轅固生)은 90에세 가까운 고령이었다. 그래서 일부 대신들이 그가 너무 연로하다며 말하자 한(漢) 무제(武帝)는 그를 면관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마음을 졸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을 묘사할 때 "重足而立(중족이립) 側目而視(측목이시)"라고 한다. 오금이 저려 두 발을 겹치고 선 채 곁눈질로 눈치를 보고 있는 모습이다. 줄여서 重足側目(중족측목)으로 쓰기도 한다.

대나무 조각에 글자를 새기는 일 또는 소송 관계의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은 관리를 도필리(刀筆吏)라고 한다. 도필리(刀筆吏) 출신의 장탕의 교묘한 말솜씨에 급암이 꾸짖는 말에서 나왔다.

"천하가 평하기를 도필리(刀筆吏)를 공경(公卿) 같은 높은 자링에 앉혀서는 안 된다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나. 바로 장탕을 두고 한 말일 게다. 重足而立(중족이립) 側目而視(측목이시)  천하가 발을 겹치고 선 채 곁눈질을 하게 하니 말이다."

급암은 황제 앞에서도 큰소리칠 정도로 성품이 강직한 인물이었다. 그는 법조문을 꼼꼼히 따져 각박하게 법을 적용하고 심지어 권력자의 기분에 맞추어 법조문을 왜곡 적용하는 도필리(刀筆吏)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측목이시(側目而視)이다.

측목이시(側目而視)란 곁눈질만 하고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두려움으로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곁눈으로 바라본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