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눈을 감고 보는 달빛

박남량 narciso 2014. 11. 21. 09:02


눈을 감고 보는 달빛





중간고사 시험을 발표하는 날이 되었다.
『누가 일등일까?』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집히는 학생을 손으로 꼽으며 일등을 저울질 하기에 바빴다. 마침내 선생님께서 한아름의 중간고사 답안지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누가 일등이지?』

아이들의 관심은 여전히 누가 일등이고 누가 이등인가에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뜻밖에도 누가 꼴찌인가를 먼저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학급에서 꼴찌는 경수다.』

경수가 꼴찌라는 말에 아이들의 표정은 덤덤하기만 했다. 왜냐하면 경수는 공부 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숙제도 해오지 않는 아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당연한 일이라고 수군거릴 때에 선생님이 말했다.
『공부 시간에 장난만 치고 선생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 학생의 성적은 좋지 않을 것이다. 또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서 금세 노는 데에 정신이 팔린다면 그 학생 역시 성적이 좋을 수 없다.』

선생님은 이어서 말했다.
『이것은 마치 젖은 나무가 약한 불에 꺼지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무에 불을 지필 때에 태우다 말다 하면 마침내 꺼지고 마는 것처럼 공부 역시 꾸준히 계속해야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다시 말했다.
『너희들 중에 눈을 감고 달빛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손 들어보아라.』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자 선생님은 덧붙여 말했다.
『눈을 감으면 달빛을 볼 수 없듯이 공부 시간에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앟게 되는 것이다.』


화엄경(華嚴經)의 보살명난품(菩薩明難品)에 나오는 이야기로 부처님께서 게으른 자에게 내리신 교훈입니다. 덕(德)을 쌓은 바보(姜永洙 編著/ 보성출판사/1994)에서 옮겨 나누는 글입니다.

화엄경(華嚴經)의 보살명난품(菩薩明難品)에서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문수보살은 진수보살에게 물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이면서도 가르침을 들은 중생은 어찌하여 똑같이 번뇌를 끊을 수가 없습니까?』
그때 진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중생에게는 신속하게 해탈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습니다. 만약 미혹을 없애고 해탈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항상 마음을 굳게 갖고 커다란 정진을 일으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젖은 나무에는 불이 잘 피지 못하는 것과 같이 불법(佛法) 안에서 게으른 자 또한 그와 같습니다. 한편 불을 피울 때에도 자주자주 쉬게 되면 불길은 약해지고 이윽고는 꺼져버립니다. 게으른 자도 이와 같습니다. 결국 게으른 자가 불법(佛法)을 구한다고 하는 것은 눈을 감고 빛을 보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솝 우화에도 위험과 불행을 원치 않는다면 무엇보다 게으름을 경계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매미와 개미의 이야기입니다.
겨울이 되었습니다. 곡식이 눅눅해지자 개미가 그것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배고픈 매미가 먹을 것을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개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름에 먹을 양식을 미리 준비해 놓지 그랬니?』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느라고 그럴 시간이 없었어.』
매미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개미가 매미를 놀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래? 여름에 노래를 불렀으니까 겨울에는 춤을 추어야 하겠구나.』

채근담(菜根譚)에는 게으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수레를 뒤엎는 사나운 말도 길만 들이면 부릴 수 있으며, 다루기 힘든 쇠도 잘 다루면 마침내 좋은 기물을 만들 수 있다. 사람이 태평하고 한가롭게 놀기만 하면서 분발하지 않으면 평생을 두고 아무런 진보도 없으리라.』

그리스의 철학자인 디오게네스(Diogenes BC412-BC323)는 가르침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가르침은 청년에게 있어서는 제어된 기쁨이며, 노인에게 있어서는 위안이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 있어서는 부(富)이며 부자에게 있어서는 장식이다.』

경쟁사회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속에도 날마다 전쟁이 있고 승부가 있습니다. 작은 가르침이지만 깨닫고 스스로 반성하여 자신을 되돌아보아 삶의 지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