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안방에는 아내가 풍성한 포도나무 같다
어느 가난한 사나이가 랍비를 찾아와
눈물을 글썽이며 하소연 했다.
『랍비님, 우리집은 좁은데 아이들은 많고
여편네가 또 그렇게 악처일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 고을에서는 가장 지독한 악처일 것입니다.
정말 저는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유태교는 이혼이 허용된다. 결혼 생활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때는 랍비의 허가만 받으며 된다.
랍비가 말했다.
『산양은 가지고 있소?』
가난하고 불운한 유태인 사나이가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유태인으로서 산양을 갖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산양을 집 안에 들여와 기르도록 하시오.』
사나이는 의아한 낯빛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다음 날 또다시 찾아왔다.
『랍비님,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악처에다 산양까지..... 이젠 틀렸습니다.』
랍비가 말했다.
『닭을 기르고 있소?』
『물론입니다. 도대체 닭을 기르지 않는
유대인도 있습니까?』유대인 사나이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닭을 전부 짐 안에서 기르도록 하시오.』
사나이는 다음 날 또다시 찾아왔다.
『랍비님, 이젠 정말 이 세상의 종말입니다.』
『그렇게 심한가요?』
『아내에다가 산양에다가 닭이 열 마리! 아아!』
『그렇다면 산양과 닭을 밖에 내다 기르도록 하고
내일 다시 한 번 찾아 오시오.』
다음 날 사나이가 다시 찾아왔다.
혈색도 좋아졌고 마치 황금의 산에서 나오기라도 한듯
두 눈이 충족의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랍비님, 산양과 닭을 내보냈습니다.
랍비님에게 천 번의 축복이 내리시옵기를!
우리 집은 이제 그야말로 궁전과 같습니다.』
[내 집 안방에는 아내가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네 밥상 둘레에는 아들들이
올리브 나무 해순들 같구나.]
(시편 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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