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변한 거타지의 아내
거타지는 신라 진성여왕 때 명궁으로 당나라로 가는 사신 진성여왕의 아들 양패를 수행하던 궁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서해로 가는 도중 배가 곡도에 이르러 풍랑을 만나 뱃길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이때 양패가 점을 치게 한 뒤 제사를 지내자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섬에 궁사 한 명을 남겨 놓으면 순풍을 만날 것이라 했습니다. 제비를 뽑아 거타지만 남게 되었는데 혼자 남은 거타지 앞에 못 속에서 노인이 나타나 매일 아침 중이 자기 가족들을 물에 뜨게 하여 간을 빼먹고 이제는 자신과 부인, 딸만 남았으니 그 중을 활로 쏘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거타지는 그것을 쾌히 승낙을 하고 다음날 아침 그 중을 쏘아 죽였는데 그 중은 늙은 여우로 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나타나 공을 치하하고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아달라고 하여 거타지는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노인은 그의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의 품에 넣어 주고 용에게 그를 호위하여 사신 양패 일행을 뒤따르게 하였습니다. 그 노인은 바로 서해의 용왕이었습니다. 거타지는 당나라에 가서 비범한 인재로 환대받고 신라에 돌아온 뒤에 꽃을 다시 여자로 변하게 하여 용녀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지에 나오는 설화입니다. 꽃에 얽힌 설화는 식물이름 유래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이야기가 많지만 사람을 변하게 하는 이야기로는 죽통미녀설화와 심청전도 있습니다. 죽통미녀설화는 이러합니다. 신라시대 김유신이 서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비상한 기운이 도는 나그네를 만났는데 품 속의 죽통을 흔들어 두 명의 미녀를 불러내어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통 속에 들여보냈습니다. 김유신이 나그네와 함께 동행하여 남산에서 나그네와 미녀 두 명에게 주연을 베풀었는데 갑자기 풍운이 일어나 나그네와 두 미녀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거타지의 설화는 악마퇴치설화로 용왕의 딸이 꽃에서 어여쁜 여인으로 변하고 거타지는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영웅으로 묘사되었으나 거타지 설화를 현대적으로 변형시킨 작품이 서정주의 거시기의 노래입니다. 거시기는 일반적인 의미로는 말하는 도중에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때 대신 쓰는 말입니다. 설화에서는 거타지가 영웅적인 모습이지만 현대적 작품에서는 평범한 인물 화랑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서정주의 거시기의 노래
팔자 사난 거시기가 옛날 옛적에 대국으로 조공가는 뱃사공으로 시험 봐서 뽑히고 배타고 갔네. 삐그덕 삐그덕 창피하였지만 아무렴 세 때 밥도 얻어 먹으며……. 거시기, 거시기, 거시기…….
그렇지만 요만큼한 팔자에다도 바다는 잔잔키만 하지도 않아, 어디만큼 가다가는 폭풍을 만나 거 있거라 으릉대는 파도에 몰려 아무데나 뵈는 섬에 배를 대었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제 아무리 시장한 용왕이라도 한 사람만 잡수시면 요기될 테니 제비 뽑아 누구 하나 바치고 빌자.' 사공들은 작정하고 제비 뽑는데 거시기가 또 걸렸네. 불쌍한 녀석.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비는 것도 효력이 있던 때였지. 바다는 잔잔해져 배는 떠나고 거시기만 혼자서 섬에 남았네. 먹을 테면 먹어 봐라 힘줄 돋우며 이왕이면 버텨보자 버티어 섰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용왕이 나와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보다 센 마귀가, 우리 식구를 다 잡아먹고, 나와 딸만 겨우 남았다. 활 잘 쏘는 화랑 아닌가? 우리 다음은 네 차례니 맘대로 해라.'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거시기는 이판사판 생각을 했네 -- '힘 안주고 물렁물렁 먹히기보다 힘 다하다 덩그렇게 죽는 게 낫다.' 그래서 그들에게 마귀가 오자 젖먹이 힘 다해서 활줄을 당겼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그럭허면 맞힐 수도 있기는 있지. 어째서 안 맞기만 하고 말손가? 배내기 때 힘까지 모두 합쳐서 거시기가 쏜 화살이 마귀 맞혔네. 어쩌다가 운 좋게끔 마귀 맞혔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그래설랑 그 상으로 용왕의 딸 얻어 가슴팍에 꽃까지 끼리인 듯이 끼리고 살았다네, 오손 도손. 사난 팔자 상팔자로 오손 도손. 마누라도 없갔느냐, 오돈 도손.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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