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는 경의진사를 시작으로 암행어사와 병조참의 벼슬을 지냈으며 카톨릭교인으로 탄핵되어 해미에 유배되기도 했으며 신유교난, 백서 사건 등으로 인해 강진 다산 기슭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목민심서를 쓴 대문호 정약용의 작품이다. 주정뱅이 아버지의 욕심으로 소경 판수에게 시집가 남편과 전실 자식에게 학대를 받다 도망가 중이 되었으나 남편의 고발로 관가에 잡혀 가는 여자의 처지를 그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작품은 대문호 정약용이 목격한 여성억압의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이다.
다산이 길을 가다가 울고 있는 여승을 보았다. 그녀는 사령들에게 붙들려 관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다산이 어느 마을 여자인가? 아버지는 누구시며 나이는 몇이며 무엇 때문에 잡혀가는가 물으니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고 곁에 있던 어미가 대신 말했다. " 저 아이는 강진 사람으로 나이는 열여덟인데 팔자가 참으로 기구한 년입니다. 시집이라고 간 곳이 소경으로 점을 치는 판수네요. 그 성질까지 고약하여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 아이 삭발하고 중이 된 것이었지요. 소경이 관가와 결탁하여 고발하니 빨리도 옵디다" 다산이 소경에 대해 그리고 혼사에 대해 궁금해 하니 어미는 딸의 혼사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일렀다.
딸이 혼기에 이르자 소경에게 돈을 받은 중매쟁이가 판수는 부자요 어진이라며 꾀였다. 귀얇은 아비는 기뻐 승낙하였고 혼례일이 되어 애타게 신랑을 기다렸더니 신랑은 소경이요 백발 성성한 늙은이였다. 신랑은 전에 두 번이나 결혼한 자이며 자식으로 두 딸과 아들을 얻었으며 작은 딸은 스물셋이었다. 어미는 눈물 펑펑 쏟으며 통곡을 하였지만 딸을 타일러 억지로 시집을 보냈지만 두세 달도 못되어 딸은 수척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소경의 점치는 일은 갈수록 천시되었는데 그녀 역시 남편의 점치는 일이 싫었다. 더구나 판수는 인색하였으며 의붓자식들은 판수에게 거짓말을 꾸며 판수로 하여금 폭력을 휘두르게 했다.
그녀는 구구절절 눈물로 하소연한 뒤 중이 되겠다고 어미의 만류에도 집을 나갔다. 이에 판수는 관가로 달려가 고발하자 관가에서 그를 붙잡아 다시 머리 기르고 부부간에 금실좋게 지내라고 호령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이혼을 할 수가 없어 여성들은 도망이나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산과 함께 그녀의 사정을 내내 엿듣고 있던 구경꾼들이 너나없이 혀를 차며 말했다. " 애처롭구나, 저 아리따운 여자. 어쩌다 늙은 소경의 짝이 되었던고"
이 작품은 어느 시각장애인의 개성 강한 아내에 관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조선 후기에 발견되는 여성문제를 짐작하게 해 주는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시대 민중 전반에 걸쳐 여성적 고충이 암묵적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현실의 시대에서는 어떠할까? 앞으로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며 고통받는 가족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아름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이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