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최고의 책략은 무엇인가?

박남량 narciso 2014. 4. 16. 09:44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최고의 책략은 무엇인가?




삼국지에는 관우(關羽), 장비(張飛), 화웅(華雄), 손견(孫堅), 손책(孫策), 조운(趙雲), 마초(馬超), 안량(顔良), 문추(文醜), 전위(典韋), 서황(徐晃), 위연(魏延) 등 무예에 뛰어난 인물이 무수히 등장한다. 이들이 한자리에 등장하여 힘을 겨룬 일이 없기 때문에 누가 가장 강한지는 판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소설이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칼을 들면 관우(關羽)가, 힘으로는 여포(呂布)가 가장 강한 것이 아니었을까.

여포(呂布)는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무장으로 삼국지(三國志) 등에서 당시의 군웅(群雄) 가운데 무용(武勇)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人中呂布  馬中赤兎]  사람 가운데는 여포, 말 가운데는 적토마라는 이야기가 있듯 신기에 가까운 무예로 명성을 얻었다. [여포 창날 같다] 매우 날카롭다는 뜻의 속담도 있다.

그는 처음에는 병주자사(幷州刺史) 정원(丁原)의 양아들로 그의 수하에 있다가 돈과 명마(名馬)에 눈이 어두워져 그를 죽이고 동탁(董卓)에게 귀순하여 동탁(董卓)을 호위하였으나 어느날 동탁(董卓)이 술에 취해 포악스러운 성격 탓으로 여포(呂布)의 얼굴을 향해 수극을 내던진 일로 인해 마음 속에는 동탁(董卓)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있었고 또 동탁(董卓)의 시녀와 사통하고 있어 발각될까 두려워하다가 나중에는 왕윤(王允)의 이간책에 의해 동탁(董卓)마저 죽였다. 이후 각지를 떠돌다 서주(徐州)를 근거지로 조조(曹操)와 맞섰으나 오히려 조조(曹操)에게 붙잡혀 죽었다.

전설에 따르면 여포(呂布)를 생포할 때 조조(曹操)는 계략을 써서 술과 수면제로 잠들게한 뒤 특별히 만든 명주실과 굵은 밧줄로 여포(呂布)를 묶었다고 한다. 잠에서 깬 여포(呂布)가 화를 내며 날뛰자 밧줄은 약간 느슨해졌으나 명주실은 점점 더 조여들어 괴력을 가진 여포(呂布)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위(魏)나라의 사서(史書)인 위지(魏志) 여포전(呂布傳)에 나오는 글이다.
드디어 여포(呂布)가 사로잡혔다. 그는 밧줄에 묶여 조조(曹操) 앞에 끌려나왔다.
"밧줄이 너무 세게 묶였으니 좀 느슨하게 해 주지 않겠소?"
여포(呂布)가 말하자 조조(曹操)는 지체없이
"호랑이를 잡았는데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하고 거절하였다.

조조(曹操)가 여포(呂布)의 부탁을 들어 주지 않은 것은 그의 괴력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이합 집산이 전국(戰國)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고 각지의 영웅 호걸들도 각각 풍운의 야망가였으나 조조(曹操)는 여포(呂布)의 경박하고도 정조가 없는 생활에 혐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조조(曹操)는 재능과 무예를 높이 평가했고 적의 장수라도 항복한 자에게는 능력에 따라 후대하고 유능한 인재를 널리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절도를 존중했다. 따라서 여포(呂布)처럼 언제 배반할 지 모르는 자는 크게 싫어했다.

호랑이는 호랑이었지만 상식도 충성심도 없는 미친 호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조(曹操)는 여포(呂布)를 단단히 묶고 주저없이 베어 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