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눈은 자더라도 마음은 깨어 있으라(睡箴)

박남량 narciso 2016. 7. 14. 13:21


눈은 자더라도 마음은 깨어 있으라(睡箴)



허균(許筠 1569-1618). 그는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미쳐야 미친다>의 저자 정민(한양대 교수)의 말입니다. 기생과 사귀다 구설수에 올랐고, 과거시험에서 조카를 부정 합격시켜 유배를 가기도 했습니다. 지방관으로 있으면서는 아침마다 향을 피워놓고 부처님께 예불을 했다 하여 파직된 일도 있습니다. 다달이 관리들이 치르는 시험에선 번번이 일등을 했고, 여러 번 탄핵당해 파직되고 귀양갔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나 어느새 벼슬길에 복귀하곤 했습니다. 그는 쉴 새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음이 많이 허탈했던 듯합니다. 그런 마음을 추슬러 다잡고자 마음공부와 관계되는 글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수잠(睡箴)

세상 사람들은 잠자는 것을 좋아한다. 밤새도록 잠을 자고도 낮잠을 또 잔다. 잠을 잤는데도 자꾸 졸리면 병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 안부를 물을 때 먹는 것과 나란히 잘 잤느니 식사는 했느냐고 묻곤 한다. 사람들이 잠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알 만하다. 젊었을 때 나는 잠이 적었지만 앓는 법이 없었다. 근년 들어 잠이 점점 많아질수록 더 쇠약해지는지라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잠이란 병이 들어오는 통로이다. 사람의 몸은 혼(魂)과 백(魄) 두 가지로 작용하게 된다. 혼(魂)은 양이고 백(魄)은 음이다. 음이 성하게 되면 사람은 쇠약해져 병들고 만다. 양이 성대해지면 사람은 건강하여 질병이 없다. 잠들면 혼은 나가고 백이 속에서 일을 꾸민다. 그래서 음의 기운이 성해져 쇠약한 질병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잠자지 않으면 혼이 작용하게 되어, 스스로 능히 백을 제압하여 양의 기운을 침범치 못하게 된다. 그러니 잠은 너무 많으면 안 된다.

옛 경전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번뇌는 독사(毒蛇)이고, 잠은 내 마음에 달렸다. 독사가 떠나가야 편히 잘 수가 있다. 잠을 즐기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번뇌하는 독사에게 괴롭힘당하는 바가 되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잠(箴)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다.

아 성성옹이여!
눈은 자더라도 마음은 자지 말라.
눈만 자면 마음을 비출 수 있겠지만,
마음마저 잠들면
음기(陰氣)를 지닌 백(魄)이 와서 침범한다네.
백이 침범해 양(陽)이 다치면
몸은 변화해 음이 되리라.
귀신과 더불어 어울릴 테니
아, 두렵구나 성성옹이여!

<미쳐야 미친다 / 정민 / 푸른역사)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수잠(睡箴)이란 잠잘 수(睡)와 경계할 잠(箴)으로 잠에 대한 경계를 담은 글입니다. 눈은 자더라도 마음은 자지 말라. 육신의 눈은 감아도 마음의 눈마저 잠들면 안 된다. 잠을 자되 마음은 깨어 있으란 말은 맨정신으로 자란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서는 이런 저런 근심이 독이 바짝 오른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고개를 세우고 있습니다. 여차하여 빈틈을 보이면 단숨에 물어 그 독이 금세 우리 온몸에 퍼지고 말 것입니다.

번뇌는 왜 생기는가? 욕심 때문에 생깁니다. 내가 남을 이겨야겠고, 더 많이 가져야겠고, 그것도 모자라 통째로 다 가져야겠기에 생깁니다. 잠자리가 편치 않고 꿈자리가 사나운 것도 모두 이 마음속에 똬리를 튼 독사 때문입니다. 음산한 기운이 그 빈틈을 파고들어와 내 영혼의 축대를 허물지 않도록 마음의 창을 닦고 또 닦아 깨끗하게 지켜야겠습니다. 잠들지 말아야겠습니다.


世人嗜睡(세인기수) 夜必終夜(야필종야) 睡晝或睡(수주혹수) 睡而不足(수이부족) 則咸以爲病(칙함이위병) 故相問訊者(고상문신자) 至以配於食(지이배어식) 必曰眠食如何(필왈면식여하) 可見人之重睡也(가견인지중수야) 余少曰少睡(여소왈소수) 亦不病(역불병) 年來漸多睡漸衰(년래점다수점쇠) 不自知其故(부자지기고) 熟思之則睡乃病之道也(숙사지칙수내병지도야) 人身以魂魄爲二用(인신이혼백) 魂陽也(혼양야) 魄陰也(백음야) 陰盛則人衰且病(음성칙인쇠차병) 陽盛則人康无疾(양성칙인강무질) 睡則魂出(수칙혼출) 魄用事于中(백용사우중) 故陰以之盛而致衰疾(고음이지성이치쇠질) 固也(고야) 不睡則魂得其用(불수칙혼득기용) 自能制魄(자능제백) 使不得侵陽也(사불득침양야) 睡宜不過多也(수의불과다야) 經云(경운) 煩惱毒蛇(번뇌독사) 睡在汝心(수재여심) 毒蛇已去(독사이거) 方可安眠(방가안면) 世之嗜睡者(세지기수자) 皆爲惱蛇所困也(개위뇌사소곤야) 豈不可懼歟(기불가구여) 仍箴以自警曰(잉잠이자경왈) 吁惺惺翁(우성성옹) 宜睡眼勿睡心(의수안물수심) 睡眼則可以炤心(수안칙가이소심) 睡心則陰魄來侵(수심칙음백래침) 魄侵陽剝體化爲陰(백침양박체화위음) 其與鬼相尋(기여귀상심) 吁可畏惺翁(우가외성옹) <꽃사진: 꽃댕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