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신윤복의 <이승영기(尼僧迎妓)>

박남량 narciso 2017. 1. 25. 11:23


우리 미술관 옛그림

신윤복(申潤福 1758- ? )  <이승영기(尼僧迎妓)>



혜원(惠園) 신윤복(申潤福 1758- ? )의
 이승영기(尼僧迎妓)는 말 그대로 비구니가 기녀를 맞이하는 그림입니다. 버드나무 가지에 새 잎이 돋는 봄날 장옷(長衣)을 입은 여인과 보퉁이를 든 여인이 절에 찾아가는 모습에 대삿갓을 쓴 여승이 미소를 머금고 맞이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가까이 개울이 흐르고 있는 배경을 담고는 모든 것을 생략해 버렸습니다.

자주색 깃을 단 녹색 장옷(長衣)을 쓴 여인이 보퉁이를 든 여인과 함께 절을 찾아가는 중에 삿갓을 쓴 비구니가 마중을 나오는 모습입니다. 장옷(長衣)을 입은 여인은 장옷(長衣)의 양쪽 고름을 손으로 모아 쥐고 오므려 큰머리를 감싸 얼굴과 상의를 가리고 있습니다. 그림에 보이는 장옷(長衣) 입은 여인은 치마를 오른쪽으로 돌려 여미고 있습니다. 기생이 아니면 부자집 여인일 것입니다. 그런데 뒤따라 오는 여인은 왼쪽으로 여미어 입고 있습니다. 장옷(長衣)을 입은 여인과 뒤를 따르는 보따리를 든 여인의 치마 여밈이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장옷(長衣)을 입은 여인과 맞이하는 여승의 화사하고 햇살 같은 밝은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뒤따르는 보따리를 든 여인은 남의 집 일을 봐 주는 입장이라 못마땅한지 부러움과 시샘이 겹쳐 그러한지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여성들이 착용했던 쓰개의 일종으로 부녀자의 얼굴을 가리려 했던 풍속에서 유래된 의복인 장옷(長衣)은 주로 서민층의 여인들이 외출할 때 사용하던 것입니다. 양반 부녀자들은 치마와 유사한 쓰개치마를 사용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양반 부녀자들까지도 장옷을 착용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서민 여인의 복식은 신분의 상하와 귀천을 가리기 위한 의복 규제가 있었습니다. 서민 여인은 장식이 배제된 소색의 저고리에 치마도 오른쪽으로 여미어 입어 양반과 그 신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당시 치마 여밈에 있어 양반집 여인들만이 왼쪽으로 여미게 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때는 조선후기로 당시 신분 질서가 무너져 일반 서민도 양반을 사기도 할 때입니다. 아무리 양반이라도 재산이 넉넉하지 못하고 벼슬에 오른 사람이 없으면 먹고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남의 집 일을 돌보는 사람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을 때였습니다. 가난한 선비는 하층민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여인을 통해 신분사회가 무너져 내린다 해도 뿌리 깊게 내려온 습관과 관습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