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지혜는 말하여 주거나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별난 것이 아닙니다

박남량 narciso 2017. 1. 4. 15:37


지혜는 말하여 주거나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별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입 하나를 밑천으로 삼아 남을 속이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주는 없지만 진실되게 살려다가 긴 널빤지를 잘라 하찮은 가랫장부도 못 만들어 구박을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어느 사회에나 당장의 말로는 그럴 듯하게 도움을 줄 것 같지만 실은 사회를 망치는 인물이 있고  재주가 없어 일시적으로 답답할지라도 가식과 사심 없이 진실되게 살아가려는 인물도 있습니다. 지금 그가 하는 말이 그럴 듯하다고 해서 너무 쉽게 믿을 일이 아닙니다. 또 당장에 하는 짓이 답답하다고 해서 너무 쉽게 책망할 일도 아닙니다.

<1>
어느 대감 집에 나이가 열여섯 된 종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성 밖에서 종일 땀을 흘려 목화 열 근을 다서 돌아오는데 이미 성문이 닫혀 버렸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근처를 서성이다가 한 사나이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사연을 말하였더니 그는 주인 대감을 잘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밥을 사주고 잠도 재워주겠으며 아침에 대감께 벌을 받지 않게 잘 말하여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여관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서 밤을 주문하고는 아이의 목화 한 근으로 밥값을 치렀습니다. 또 술과 예쁜 여자를 주문하고는 목화 몇 근을 더 내주었습니다. 아이가 더 내놓으려 하지 않자 사내는 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느냐며 내일 아침에 대감을 뵙고 다 말씀드릴 테니 염려할 것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사내는 종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린 종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 그간에 있었던 일을 다 고하였습니다. 대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넝구렁이 같은 놈이 순진한 너를 속여 도적질을 하였구나."

<2>
어떤 사람이 열 자 쯤 되는 널빤지를 구해 목수에게 선반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선반은 얇고 길면서도 반듯한 나무로 만드는 것입니다. 목수는 그렇게 뛰어난 재주를 지니지는 못하였지만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도끼로 나무를 자르다가 잘못하여 가운데를 잘라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선반을 만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목수는 주인에게 사죄하며 선반 대신에 도투마리를 만들면 어떠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도투마리는 양끝은 네모나고 가운데는 잘룩한 모양인데 날줄을 감고 가는 대나무를 끼워 베틀 위에 가로질러 놓는 기구입니다. 그런데 목수가 또 실수를 하여 모퉁이를 잘라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도투마리도 만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목수는 주인에게 다시 사죄하며 도투마리 대신 가랫장부를 만들라고 조심스레 권하였습니다.

가랫장부는 자루가 길고 끝이 넓게 생겼는데 끝에다 가랫날을 끼워 땅을 파는 기구입니다. 목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를 잘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잘못하여 나무의 오른쪽 귀퉁이를 잘라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가랫장부도 만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목수는 주인에게 백배 사죄하며 가랫장부 대신 말목을 만들라고 다시 권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화를 벌컥 내며 지팡이를 휘둘러 그 목수를 내쫓았습니다.

나누는 이 두 개의 우화는 조선 시대 학자이자 문인으로 외교관으로도 이름을 떨친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집(於于集)에 실린 글을 설성경의 <세상을 거꾸로 보는 관상장이>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에 대해서 공자(孔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視其所以(시기소이)  觀其所由(관기소유)  察其所安(찰기소안)  人焉瘦哉(인언수재)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의도를 살피고, 그 사람이 그 결과에 만족하는가를 살피라. 사람이 어찌 자기를 숨길 수 있겠는가?"

누군가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행동의 연유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그 사람이 무엇에 만족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이만큼 그를 살펴본다면 어느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꽃사진: 망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