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혼백 문주란
먼 옛날 한 사내아이가
일하러 나간 할머니를 기다리며
제주도 동쪽 토끼 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내아이에게는 부모나 형제가 없었으며
물질을
하는 해녀 할머니 한 분이 유일한 가족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 물질하기도 힘에 겨웠지만
손자와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도 할머니는 물질을 하기
위해 바다로 나갔습니다
사내아이는 할머니가 바다 속에서 갖가지 해물을 올리는 동안
홀로 바닷가에서 모래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개를
주우며
할머니를 기다렸습니다
할머니가 돌아올 즈음이면 토끼 섬 가까이로 갔습니다
할머니가 늘 토끼 섬 가까이에서만 물질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물이 빠지는 날에는 토끼 섬으로 건너가곤 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차츰 빨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철모르는 사내아이는
할머니를 빨리 만날 수 있어 좋기만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나야 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이 세상에 혼자 남겨 둘
손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나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할머니가 손자의 얼굴을 보며 넌지시
내가 없어도 살 수 있겠니 하고 물으면
할머니와 오래오래 함께 살 건데 하곤
아무 걱정없이 대답하곤 하였습니다
내가 한 만 년이라도 산다던 하면
만 년도 더 살거예요 답하곤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점점 몸이
쇠약해져서
어느 날 밤 잠이 들어서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죽은 할머니의 혼백이 문을 나서 토끼 섬까지 갔지만
손자에
대한 애처로움으로 차마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혼백이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토끼 섬에서 한 송이 꽃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꽃이 문주란 이라고 합니다
할머니는 문주란이 되어 손자를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제주도 토끼 섬에
자라는 문주란의 꽃말은
청순함,순박,정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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