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과 신하가 덕으로 만나는 다락이라는 경회루
태조 때 경복궁 서북쪽에 작은 누각을 지었으나 태종 때 큰 규모로 새롭게 누각을 짓고 이름을 경회루라고 했다. 경회의 뜻은 올바른 정사를 펴는 임금은 올바른 사람을 얻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으니 올바른 사람을 얻어야만 경회라고 할 수 있다고 밝히며 이는 곧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써 서로 만나는 것을 말한다고 적고 있다.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써 만나는 다락이라는 경회루에 학문과 풍류를 좋아했던 성종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가 전한다. 그는 어느 날 저녁 경희루에 올랐다. 때는 신하들이 퇴청한 무렵 성종은 자신이 아끼는 손순효가 술을 좋아해 그 술자리에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성종은 내관을 보내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알아보고 오도록 했다. 한참 뒤에 왕의 심부름을 다녀온 내관이 전하의 말씀대로 손 대감이 그 자리에서 술단지를 안고 바가지로 술을 마시고 있더이다. 그런데 술상이 어찌나 소박한지 안주라고는 오이장아찌 두 쪽이 전부여서 제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하고 보고했다.
평소 청렴하고 강직하기로 소문난 손순효. 성종은 자신의 짐작이 들어맞자 무척 기분이 좋아 내관에게 술상을 푸짐하게 차려 손순효에게 갖다 주라 하였다. 또 손순효가 집에서 숙취를 해소하도록 다음 날은 입궐하지 말라 일렀다. 왕과 신하의 위치가 분명했던 조선 시대에도 경회루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냄새를 간직하고 있다.
경회루는 태종 때 사신의 접대 등 목적으로 중건했다. 그 외에도 과거시험이나 활쏘기 등을 열거나 연회를 베푸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어 왔다. 또한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경회루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완전 소실되어 폐허로 남아 고종 때 재건되었다. 경회루는 단일 누각으로 국내 최대규모의 웅장함으로 심오한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다.
경회루로 건너가는 세 개의 다리는 해, 달, 별의 삼광을 뜻하고 다리를 건너 경회루 기단 양끝에 있는 두 개의 문은 음양을 뜻한다고 한다. 또한 경회루의 바깥 돌기둥이 네모지고 안쪽 기둥이 둥근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의 우주관을 드러내 준다고 한다. 경회루의 상층은 삼중으로 되어 있는데 정중앙의 1중 3간은 천지인 삼재를 의미하며 이 3간의 기둥을 이루고 있는 8개의 기둥은 팔괘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 다음 1중을 둘러싸고 있는 2중의 12간은 일년 12달을 의미하고 기둥 16개의 각 기둥 사이에 네짝의 문이 달려 있어 이는 64궤를 의미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2중을 둘러싸고 있는 3중의 24개의 기둥은 24절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동으로 만든 용 두 마리를 연못 북쪽에 넣어 두었는데 이는 불을 막기 위해서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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