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어머니를 만들었다
잃어 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인 프랑스의 유태계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린 시절 응석받이로 자랐다. 어려서 어머니가 며칠 집을 비우면 울고 불고 큰 떼를 썼다고 한다. 13세 무렵에 너에게 가장 비참한 일이 무어냐고 물으면 어머니와 떨어지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어른이 되고 33 세가 되어서도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그립고 그리운 어머니라는 말로 시작이 된다. 그리고 하루에 두세 번이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거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하나를 보면 우리 둘은 언제나 무선전신으로 이어져 있으니 서로 멀리 있건 멀리 떨어져 있건 항상 마음이 가깝게 오가고 옆에 마주 앉아 있는 셈이 됩니다하고 씌여있다. 마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느낌이다.
프루스트는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자라났고 이상적인 존재였으나 어머니의 애정이 프루스트의 속에 있는 특이한 재능을 발굴하여 이끌어갔던 것이다. 유태의 격언에 신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신은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다. 유태의 어머니는 교육의 어머니였다. 유태의 어머니(Jewish mother)의 애정은 아이들에게는 신처럼 절대적인 것이었다. 때로는 과보호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비꼬아지며 쓰이는 경우가 있을 지경이다. 이러한 어머니에 의해서 길러졌기에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감정을 몸에 지니며 자라 뒷날 잃어 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명작이 태어난 것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과보호는 아이를 망친다고 믿어지고 있다. 응석을 부리는 아이를 보면 부모가 응석을 받아주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보호가 아이를 망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머니의 애정이 아이의 독특한 재능을 최대한도로 뻗어나게 해서 독창적인 인간을 형성한 일도 사실이 아닌가. 과보호가 아이의 독창적인 재능을 꽃피운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위인들의 위대한 업적의 그늘에는 어머니의 애정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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