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범종소리를 담아내는 공명통 / 정호승의 항아리

박남량 narciso 2008. 1. 31. 09:28



범종소리를 담아내는 공명통 / 정호승의 항아리


 

            독 짓는 젊은이가 처음 만든 항아리는
             썩 잘 만들어진 항아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래위가 좁고
             허리가 두둑한 항아리로 태어난 자기 자신을

             항아리는 대견스럽게 기쁘게 생각했다.

             항아리는 누군가를 위해
             그 무엇을 위해 쓰여지는 존재가 되고 싶었지만
             뒷간 마당가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젊은이가 삽을 가지고 와 항아리를 땅속에 묻었다.

             항아리는 이제서야 남을 위해 쓰여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항아리는 오줌독이 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오줌을 누고 갔고
             가슴께까지 오줌을 담고 살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해 봄
             폐허가 된 가마터에 사람들이 절을 짓기 시작했다.
             몇 해에 걸쳐 절을 짓고 종을 달았다.
             그런데 종소리가 탁하고 울림이 없어 공허하다고
             주지스님은 고민을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주지스님에게 우연히 발견된 항아리는
             종각 밑에 묻히게 되었다.
             항아리를 종 밑에 묻고 종을 치자
             종소리가 항아리 안에 가득 들어왔다가
             조금씩 조금씩 숨을 토하듯
             항아리를 한바퀴 휘돌아나감으로써
             참으로 맑고 고운 소리를 내었다.              
             항아리는 자기가 종소리가 된 게 아닌가 하고
             착각에 몸을 떨었다.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려
             영혼의 소리를 내는 항아리가 된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동화 항아리에 나오는
             범종 밑의 항아리 이야기이다.
             못난 모습으로 태어나
             오줌을 가득 담은 채 잔뜩 얼어붙은 가슴으로
             한겨울을 나던 오줌독으로 살아왔지만
             마침내 범종소리를 담아내는
             공정통이 될 수 있었던 항아리.
             우리의 삶에 잊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 정호승의 항아리 -

 

 

 나는 독 짓는 젊은이한테서 태어났습니다.
 젊은이는 스무살 때 집을 떠나 멀리 도시로 나갔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업을 잇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독을 짓기 시작한 젊은이였습니다.
 나는 그 젊은이가 맨 처음 지은 항아리로 태어났습니다.

 그런 탓인지 나는 그리 썩 잘 만들어진 항아리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독 짓는 법을 쭉 배워왔다고는 하나
 처음이라서 그런지 젊은이의 솜씨는 무척 서툴렀습니다.
 곱게 질흙을 빚는 것도,
 가마에 불을 때는 것도,
 디딜풀무질을 하는 것도,
 잿물을 바르는 것도 모두 서투르기 짝이 없었습니다.

 젊은이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자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마치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아주 기분나빴습니다.
 그러나 나는 뜨거운 가마 밖으로 빠져나온 것만 해도 기뻤습니다.
 처음에 가마 속에 들어갔을 때 불타 죽는 줄만 알았지,
 내가 다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내가 아래위가 좁고 허리가 두둑한 항아리로 태어났으니
 그 얼마나 스스로 대견스럽고 기쁘던지요.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기쁨일 뿐
 젊은이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대로 뒷간 마당가에 방치되었습니다.
 나의 존재는 곧 잊혀졌습니다.
 버려지고 잊혀진 자의 가슴은 무척 아팠습니다.
 항아리가 된 내가 그 무엇을 위해
 소중하게 쓰여지는 존재가 될 줄 알았으나,
 나는 버려진 항아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가면 빗물이 고였습니다.
 빗물에 구름이 잠깐 머물다가 지나갔습니다.
 가끔 가랑잎이 날아와 맴돌 때도 있었습니다.
 밤에는 이따금 별빛들이 찾아와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만일 그들마저 찾아와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대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안타까웠습니다.

 나는 그 누군가를 위해 사용되는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뜨거운 가마의 불구덩이 속에서
 끝끝내 살아남은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하루는 젊은이가 삽을 가지고 와서 깊게 땅을 파고는
 모가지만 남겨둔 채 나를 묻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땅속에 파묻힌 나는 내가 무엇으로 쓰여질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슴은 두근거렸습니다.
 이제서야 내가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남을 위해 무엇으로 쓰여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그저 한없이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감나무 가지 위에 휘영청 보름달이 걸려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젊은이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가슴을 억누르고 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젊은이의 발걸음소리는
 바로 내 머리맡에 와서 딱 멈추었습니다.
 나의 가슴은 크게 고동쳤습니다.
 달빛에 비친 젊은이의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나는 고요히 숨을 죽이고
 젊은이를 향해 마음속으로 크게 팔을 벌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젊은이는 고의춤을 열고
 주저없이 나를 향해 오줌을 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아, 나는 그만 오줌독이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나는 참으로 슬펐습니다.
 아니, 슬프다 못해 처량했습니다.
 지금까지 참고 기다리며 열망해 온 것이
 고작 이것이었나 싶어 참담했습니다.
 젊은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오줌을 누고 갔습니다.
 젊은이뿐만 아니었습니다.
 젊은이의 아이들도 가끔 들르는 동네 사람들도
 오줌을 누고 갔습니다.
 내가 오줌독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결국 나는 오줌독이 되어
 가슴께까지 가득 오줌을 담고 살고 있었습니다.

 곧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날은 갈수록 차가웠습니다.
 강물이 얼어붙자 오줌도 얼어붙어버렸습니다.
 나는 겨우내 얼어붙은 내 몸의 한쪽 구석이
 그대로 금이 가거나 터져버릴까봐
 조마조마해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내 몸이 온전한 채 봄이 찾아왔습니다.
 물론 얼었던 강물도 녹아 흐르고
 얼어붙었던 오줌도 다 녹아내렸습니다.
 사람들은 밭을 갈고 씨를 뿌렸습니다.
 씨를 뿌리고 난 뒤에는
 내 몸에 가득 고인 오줌을 퍼다가 밭에다 뿌렸습니다.
 배추밭에는 배추들이 싱싱하게 자랐습니다.
 무밭에는 무들이 싱싱하게 자랐습니다.
 나는 그들이 싱싱하게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내가 오줌독이 되어 오줌을 모아줌으로써
 그들이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런대로 나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오줌독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늘 가슴 한쪽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1 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여전히 오줌독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 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여전히 오줌독으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내게 오줌을 누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굳이 누가 있다면 새들이 날아가다가
 찔끔 똥을 갈기고 가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독 짓는 젊은이는 독 짓는 늙은이가 되어
 병마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독 짓던 가마 또한 허물어지고 폐허가 되어
 날짐승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느새 오줌독의 신세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오줌독 따위가 아닌
 아름답고 소중한 그 무엇이 되기를 간절히 열망하였습니다.
 사람의 일생이 어떠한 꿈을 꾸었느냐 하는
 그 꿈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면
 나도 큰 꿈을 꿈으로써 내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이었습니다.
 두런두런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리더니
 폐허가 된 가마터에 사람들이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집은 제법 규모가 큰 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몇 해에 걸쳐 일주문과 대웅전과 비로전은 물론
 종각까지 다 지었습니다.
 종각이 완공되자 사람들은 에밀레종과 비숫하나
 크기는 보다 작은 종을 달았습니다.
 종소리는 날마다 달과 별이 마지막까지 빛을 뿜는
 새벽하늘로 높이 울려퍼졌습니다.
 새벽이 올 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그대로 땅 속에
 파묻혀 있는 내게 종소리는 새소리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소리가 아름답지 않다고 야단들이었습니다.
 종소리가 탁하고 울림이 없어 공허하기만 하지
 맑고 알차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절의 주지스님은 어떻게 하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내 머리맡에 흰 고무신을 신은
 주지스님의 발이 와서 가만히 머물렀습니다.
 주지스님은 선 채로 한참동안 나를 내려다보시더니
 혼자말로 중얼거렸습니다.
 " 으음, 이건 아버님이 만드신 항아리야.
 이 항아리가 아직 남아 있다니. 이 항아리를 묻으면 좋겠군."
 스님은 무슨 큰 보물을 발견이라도 한 듯이
 만면에 미소를 띠었습니다.

 나는 두려움에 떨며
 곧 종각의 종 밑에 다시 묻히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하여
 종 밑에 묻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종 밑에 묻고 종을 치자
 너무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종소리가 내 몸안에 가득 들어왔다가
 조금씩 조금씩 숨을 토하듯
 내 몸을 한바퀴 휘돌아나감으로써
 참으로 맑고 고운 소리를 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먹만한 우박이
 세상의 모든 바위 위에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갈대숲을 지나가는 바람이나 실비 소리 같기도 하고
 그 소리는 이어지는가 싶으면 끝나고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는 내가 종소리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때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참고 기다려온 것이 무엇이며
 내가 이 세상을 위해 소중한 그 무엇이 되었다는 것을
 누구의 삶이든 참고 기다리고 노력하면
 그 삶의 꿈이 이루진다는 것을
 고요한 산사에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요즘 나의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범종의 음관역할을 함으로써 보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낸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내 존재의 의미이자 가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