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중심의 사랑에서 생명 본위의 사랑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인간 중심의 사랑에서 생명 본위의 사랑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 옛날 한 나라가 있었는데 화묵(和默)이라고 하는 왕이 다스렸다. 어리석은 왕은 바라문과 무당을 섬겼고 생물을 죽여 제사지내는 것을 떳떳한 일로 삼았다. 왕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앓게 되었다. 왕은 이름난 의사들을 불러 치료케 하고 무당들을 시켜 굿을 하고 기도를 올리도록 했으나 병은 날로 더해만 갔다.
어느날은 나라 안에 있는 2백 명의 바라문을 궁중으로 모셔 음식을 공양하고 나서 말하였다.
『우리 어머님께서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는데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바라문께서는 지식이 많아 천지의 운행과 별자리 보는 법을 환히 알고 계실테니 어떤 잘못이 있어 그러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은 말했다.
『별들이 뒤섞여 음양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럼 어떤 방법을 쓰면 병을 낫게 할 수 있을까요?』
『성 밖의 평탄하고 정한 곳에 제단을 차려 네 산과 해와 달의 별들에 제사하고, 백 마리의 짐승과 어린애 하나를 죽여 하늘에 제사하되, 왕께서 몸소 어머니를 모시고 제단 앞에 끓어앉아 절하면서 장수(長壽)를 비십시오. 그렇게 하면 병이 날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대로 준비를 서둘렀다. 어린애 하나와 코끼리, 말, 소, 양 등 백 마리의 짐승을 제단으로 몰고 갈 때, 그 길에는 슬픈 울음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쳤다. 부처님의 큰 자비는 간악하고 어리석은 바라문과 왕의 소행을 살피시고 죽음으로 끌려가는 중생들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무수한 목숨을 희생시켜야 한단 말인가.』 부처님은 급히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 나라로 갔다. 성 밖에서 바라문과 왕에게 몰려 슬피 울면서 지나가는 어린이와 짐승을 만났다. 부처님과 제자를 보자 왕은 수레에서 내려 일산(日傘)을 물리치고 부처님께 예배한 후 문안을 드렸다. 그리고 그날 올릴 제사이 내력에 대해서 사뢰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곡식을 얻으려면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하고, 큰 부자가 되려면 널리 보시(布施)를 행해야 하며, 장수(長壽)를 누리려면 큰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지혜를 얻으려면 배우고 물어야 합니다. 이 네 가지 일을 행할 때에는 그 뿌린 것을 따라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무릇 부귀한 자는 가난한 이의 음식을 탐하지 않는 법입니다. 저 하늘(天神)들은 칠보로 궁전을 이루었고 옷과 음식은 저절로 생기는데, 어째서 하필이면 감로(甘露)의 음식을 마다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으러 오겠소? 사악한 짓을 바르다 하고, 무수한 목숨을 죽여 한 목숨을 구하려고 한들 어찌 그 소원이 이루어지겠습니까?』
부처님은 게송(偈頌)을 읊으셨다.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면서 천하의 귀신을 부지런히 섬기며 코끼리와 소와 양으로 제사지내도 한번 자비를 베푼 것만 못하네.』
부처님의 이와 같은 설법을 듣고 왕은 어리석음의 구름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앓던 병자는 심신이 상쾌해져 병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2백 명의 바라문들도 바른 가르침을 듣고는 부끄러워하고 허물을 뉘우쳐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원했다. 부처님을 그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삶의 깨달음을 일깨워주는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자인품(慈仁品)에 실린 글로 법정스님의 인연(因緣)이야기에서 '코끼리와 소와 양을 잡아 제사 지내도'의 글입니다. 사람의 목숨이나 짐승의 목숨이 그 근원에 있어서는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 중심의 사랑에는 모순이 따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인간 중심의 사랑에서 생명 본위의 사랑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성서에서도 이렇게 가르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