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인생이 자신을 버려두고 스쳐지나가지는 않을까 불안하세요

박남량 narciso 2015. 7. 22. 08:03


인생이 자신을 버려두고 스쳐지나가지는 않을까 불안하세요



어떤 의미에서 절망은 모든 일의 중심일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뚫고 갈 준비가 됐다면 말이다. 우리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시기에 대비해야 하며 거짓 하느님으로 대체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느님이 부재중일 때, 하느님이 침묵할 때, 그때가 기도의 시작이다.

우리가 할 말이 많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에게 『저는 당신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렇게 잔인하십니까? 왜 그렇게 침묵을 지키고 계십니까?』 하고 말할  때가 기도의 시작이다.

우리가 찾아내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우리가 하느님이 존재하는 곳으로 돌진하게 만든다. 우리가 사랑하고 갈망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승리가 이미 절망의 반대쪽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교회 신학자 앤터니 블룸(Anthony Bloom)의 기도의 시작(Beginnng to Pray)에서 옮겨 나누는 글이다. 예수회 사제인 『닐 기유메트(Nil Guillenette)』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살려 집필한 『A Lamp for My Feet(내 발의 등불)』에서 햄프턴 신부와 브렌디 수녀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을 향한 이야기이다.


영성생활의 권위자이신 신부를 찾아간 수녀는 마치 책을 펼치듯 자신의 인생 전체를 털어놓았다. 그녀가 긴 이야기를 끝내고 우울증의 원인과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묻자 신부는 간단히 대답했다.

『하느님 입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하지만 저는 하느님을 위해 제 인생 전부를 보냈어요! 어떻게 신부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나요?』

신부는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느냐며 한숨을 내 쉬었다. 그는 수녀와 같은 사람들을 얼마나 자주 만났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눈을 참 영혼의 삶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고 있었다. 그가 상냥하게 말을 꺼냈다.

『자신의 인생을 한번 주의 깊게 검토해보세요. 특히 평소 수녀님의 일상적인 동기들을 관찰해보세요. 틀림없이 참으로 놀라운 뭔가를 발견할 것입니다. 오랫동안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수녀님은 하느님께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동기에서 행동하고 결정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보통 사람들이 갖는 기본적인 동기, 즉 성공하거나 남보다 뛰어나려는 욕구, 인정이나 평가를 받으려는 욕망, 자아실현의 갈망에서 노력했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 욕구나 갈망을 원할까요? 우리 모두가 불안정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수녀님도 스스로 내부에서 발견했듯이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성공을 아무리 쌓아도 수녀님은 여전히 불안 속에 남겨질 것입니다.』

신부는 그 생각이 깊이 스며들도록 잠시 말을 멈추었다. 노사제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녀는 처음으로 자기에 관한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으나 진실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면 신부님, 무엇이 우리 인생에 참된 안정을 줄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수녀는 첫 번째로 하느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단순히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했다. 그것은 솔직한 태도로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이며 양심성찰이나 숙고를 통해 동기를 정화함으로써 성령과 마음을 맞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옛 삶을 버려야 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업적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불안해질 때마다 자신에게 타이르십시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느님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고.』노사제의 충고를 따랐다. 그러나 곧 실망하며 자기 인생에 대해 새로운 공허감을 느꼈다. 신부가 수녀에게 동기를 불어넣었다.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내 버려둔 삶은 거짓이지 진실한 삶이 아닙니다. 마치 금단현상을 겪는 마약중독자와 비슷합니다. 수녀님은 자신의 불안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던 수녀님의 마약을 단념했지만 아직 그 마약에서 해방된 온갖 기쁨을 완전히 음미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쁨은 시간과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기회를 한번 주세요. 그러면 곧 찾아올 것입니다.』

수녀는 공허한 시간을 예전처럼 채우는 대신 산책하며 자연과 친교를 나누고 사랑과 형제애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삶의 선물에 감사하면서 자질구레한 일들에 연연하려는 유혹을 뿌리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자기 안에서 낯설고 기묘한 평화가 솟아오른 것이다. 끓어오르는 것 같은 기쁨은 잠시도 떠나지를 않았다.

그녀는 신부에게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지요?』

『수녀님은 깊은 자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 밖에서는 어떤 행복도 찾으려 하지 않을 때 그분 자신을 내어주지 못해 안달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태초부터 그분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제 수녀님은 성서말씀처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알았으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수녀님은 그분께 속해있으며 그분은 수녀님에게 속해 계십니다. 지금부터는 오직 하느님을 향한 여정을 떠나시면 됩니다.』

앤터니 블룸(Anthony Bloom)은 기도의 시작(Beginnng to Pray)에서 말합니다. 『복음서는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강조한다. …내면 가장 깊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바깥에서 그분을 만날 기회를 얻을 가능성은 몹시 희박하다. …그러므로 눈을 돌려야 할 곳은 내면이다.』 보조국사 수심결(修心訣)에 나오는 말을 맞추어 본다. 『嗟夫!今之人, 迷來久矣. 不識自心是佛  애달프다, 요즘 사람들은 어리석어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이고 자기 성품이 참 법인 줄 모르고 있다』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어디론가 우리는 가야 하고 가기 위해서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 사람다움의 길, 인간 완성의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