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막달레나의 사랑과 제자들의 열정을 묵상합니다

박남량 narciso 2015. 3. 25. 10:14


막달레나의 사랑과 제자들의 열정을 묵상합니다



막달레나는 놀랍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치워졌기 때문입니다. 한순간에 그녀는 베드로에게 달려갑니다. '누군가 무덤에 손을 댔습니다. 주님을 꺼내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놀란 베드로와 요한도 달음질쳐 갑니다. 그러고는 스승의 수의만 발견합니다. '이럴 수가? 시신이 없어지다니!' 그때까지도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아침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
The Disciples Peter and John
Running to Sepulchre on the Morning of the Resurrection
오르세 미술관, 파리, 프랑스
(Eugene Burnand 1850-1921)

 

제자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입니다. 그런 그가 부활을 몰랐습니다. 베드로도 이랬는데 우리가 어찌 한눈에 부활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모르는 것이 정상입니다. 별 느낌 없이 축일을 맞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런 일입니다. 다만 우리는 노력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난 그리스도>
1610년 엠마누엘 람파르도스(Enmanuel Lampardos) meister
그리스 크레타, 이콘, 예루살렘 그리스 문화유산, 이스라엘



부활은 신비입니다. 이론과 설명만으로는 가까이 가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부활은 교과서에 담긴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부활의 진정한 깨달음에 닿을 수 있겠습니까?

 


<부활하신 그리스도>
미켈란젤로, 부활, 드로잉, 윈저, 왕립 도서관
예수님이 부활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아닌 맨손을 번쩍 들어서 하늘을 나는듯한 모습으로 그렸다
그리고 등장인물 전부를 옷을 입지 않은 나체의 모습으로 그렸다.
예수님 주변에서 각양각색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무덤을 지키는 경비병들 역시 나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시신을 감쌌던 마직포 자락을 휘날릴 뿐이다
미켈란젤로의 이 드로잉은 그림으로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에 대한 아이디어만을 짐작케 한다



막달레나의 행동 속에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녀는 이른 새벽 예수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죽었다고 믿어지지 않는 스승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스승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그녀를 무덤으로 가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그들도 예수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막달레나의 말을 듣자 한순간에 달려갔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무덤 안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막달레나의 사랑과 제자들의 열정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로 돌아간다면 누구나 새롭게 부활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만남/신은근 신부/바오로딸/사진 Good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