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空城)의 계략
중국 황건의 난부터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집필한 중국의 대표적 고전 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공성(空城)의 계략'이란 말이 나온다.
위기에 처했을 때 지휘자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아닐까.
제갈공명(諸葛孔明 181-234)은 가정(街亭)을 함락당한 후 약간의 군사를 이끌고 서현성(西縣城)으로 후퇴하였다. 서현성(西縣城)은 산골의 작은 현이었으나 촉(蜀)의 군량을 저축해둔 곳으로 남안, 천수, 안정 세 고을로 통하는 관문의 요지였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은 군량을 좀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했다. 그런데 별안간 사마의(司馬懿=司馬仲達 179-251)이 이끄는 위(魏)의 대군이 습격해 왔다.
설마 사마중달(司馬仲達)이 촉(蜀)의 본진으로 가지 않고 이런 데에 나타날 줄은 예상도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갈공명(諸葛孔明)도 최후의 보고를 받고
『사마중달(司馬仲達)의 본대가 이리로 올 까닭이 없다. 아마도 별동대(別動隊)일 테지.』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잇따라 보고가 들어오고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성에 올라와보니 사마의(司馬懿)의 깃발을 게양한 적의 기병대가 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을 보자 막료들은 아연 실색을 하였다.
『승상님, 도저히 소수를 가지고는 다수를 당할 수 없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철수해야겠습니다.』
『도주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내 지시대로 행동하거라.』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막료들을 제지한 뒤 성밖에 있는 부대를 모두 들어오게 하고는 성문을 크게 열고 그 앞의 길을 깨끗이 청소했다. 적이 쳐들어와도 도망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은 학 날개 옷을 입고 윤건을 쓰고 동자 두 명에게 비파를 들게 하여 성문 위에 올라앉아 유유히 비파를 뜯으며 적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말을 달려 성문 앞에 다다른 사마중달(司馬仲達) 일행은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성루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더구나 태연하게 웃는 낯으로 향을 피우고 비파를 뜯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마중달(司馬仲達)은 틀림없이 계교가 있을 것이라 믿고『이것은 틀림없는 함정이다.』라 생각하고는 말머리를 돌려 전군을 철수시키고 말았다.
이에 차남인 사마소(司馬昭 211-265)가 불만이라는 듯이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병력이 부족하므로 우리가 공격하면 패할 것을 각오하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닐까요? 』라고 하였다.
그러자 사마중달(司馬仲達)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은 평소에 신중하기 이를 데 없는 참모야. 지금 성문을 크게 열고 안에 한 사람의 병사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기략(奇略)임에 틀림없다. 만일 쳐들어가면 그의 함정에 빠지게 될 뿐이다.』
훗날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안 사마중달(司馬仲達)은 차남 사마소(司馬昭)에게
『나의 잘못이었다. 그때 네 말을 듣고 성 안으로 쳐들어갔다면 틀림없이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 터인데.』하며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후세에 전략 연구가들은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채택한 이 전술을 '공성(空城)의 계략'이라고 이름붙였다. '공성(空城)의 계략'은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공허한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뭔가 계략을 숨겨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전략을말한다.
『虛者虛之 疑中生疑 剛柔之際 奇而復奇
병력이 적을 때는 일부러 더욱 적은 것으로 보여 의심많은 적을 한층 더 의심하게 할 수 있다. 병력이 적을 때의 기책으로 효과를 얻는다.』
'공성(空城)의 계략'은 위기에 처했을 때 지휘자가 취한 태도를 시사해 준다. 위기에 처했으면서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가운데서도 활로를 찾는 공명의 자세는 현대의 삶에서도 충분한 참고가 될 것이다.<사진: 언양 작천정>
'삶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심(變心)이란 형체가 없는 유령과 같다 (0) | 2015.02.18 |
---|---|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을 저울질하는 잣대가 없다 (0) | 2015.02.15 |
탐욕에서 벗어나는 것은 해탈 (0) | 2015.02.12 |
지혜가 있으면 그것은 무명(無明) 속의 등불이다 (0) | 2015.02.06 |
누울 자리 봐가며 발을 뻗어라 (0) | 2015.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