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아만(我慢)의 반성을 가리키는 고사성어 옥촉서풍(玉薥西風)

박남량 narciso 2020. 1. 23. 15:37


아만(我慢)의 반성을 가리키는 고사성어 옥촉서풍(玉薥西風)



세상이 알아주는 한다 하는 이가 반눈에도 차지 않았다. 하지만 갖은 신산(辛酸)을 다 겪고 제주 유배지에서 아내마저 떠나보낸 뒤 다시 북청까지 쫓겨 갔다. 이제 늙고 병들어 가을바람에 지친 발걸음을 재촉한다. 북청 유배에서 풀려 돌아오다 강원도 지역을 지날 때였다. 길을 가는데 옥수수 밭에 둘린 초가집이 한 채 있었다. 흘깃 보니 늙은 내외가 마루에 나와 앉아 웃으며 이야기꽃이 한창이었다. 내외는 길 가던 객(客)이 불숙 마당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객(客)은 물 한 잔을 달래 마시더니 잠시 쉬어 가겠다는 듯 마루에 슬쩍 엉덩이를 걸친다.

"여보 노인! 올해 나이가 몇이우?"
"일흔입지요."
"서울은 가 보았소?"
"웬걸인겁쇼. 관청에도 못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래 이 산골에서 무얼 자시고 사우?"
"옥수수를 먹고 삽니다."

흰 머리의 내외가 볕바라기로 앉은 툇마루의 대화이다. 서울 구경 한 번 못하고 관청 문 앞에도 못 가 봤지만 옥수수 세 끼니로도 그들의 얼굴엔 시름의 그늘이 없었다. 아주 행복해 보였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제촌사벽(題村舍壁)이라는 시(詩)이다. 시골집 벽에 쓰다라는 뜻이다.

禿柳一株屋數椽(독류일주옥수연)
翁婆白髮兩蕭然(옹파백발양소연)
未過三尺溪邊路(미과삼척계변로)
玉薥西風七十年(옥촉서풍칠십년)

두어 칸 초가집에 대머리 버들 한 그루
노부부의 흰 머리털 둘 다 쓸쓸하구나
석 자도 되지 않는 시냇가 길가에서
옥수수로 갈바람에 칠십 년을 보냈네

시(詩)를 지은 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이렇게 썼다. "나는 남북을 부평처럼 떠돌고 비바람에 휘날렸다. 노인을 보고 노인의 말을 듣고 나니 나도 몰래 망연자실(茫然自失)해졌다.

禿柳(독류)란 드리운 가지가 듬성듬성한 버드나무를 뜻하고, 禿(독)은 대머리란 뜻이다.
數椽(수연)이란 서까래 몇 개로 지은 집, 작은 집을 말한다.
翁婆(옹파)란 늙은잉와 노파, 노부부를 뜻한다.
蕭然(소연)이란 쓸쓸하고 호젓한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玉薥(옥촉)이란 옥수수를 말한다.
西風(서풍)은 가을 바람, 금풍(金風)이라고도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불신과 갈등이라는 벽은 허물어지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아만(我慢)과 아집(我執)에 사로 잡혀서 헤어나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편이 아니면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 모습은 정말 안타깝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상존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은 옳고 다른 사람의 행동은 바르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다운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단언컨데 이러한 사람들은 끝도 그렇게 결론이 날 것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시(詩) 제촌사벽(題村舍壁)에서 전해지는 고사성어 옥촉서풍(玉薥西風)이다.

옥촉서풍(玉薥西風)이란 아만(我慢)을 버리고 참나(眞我)를 돌아본다는 뜻으로, 세상이 알아주는 한다 하는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크게 뉘우친 아만(我慢)의 반성을 말하는 것으로, 모름지기 순리를 알고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꽃사진: 망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