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한다는 고사성어 거총사위(居寵思危)

박남량 narciso 2019. 6. 22. 13:22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한다는 고사성어 거총사위(居寵思危)



당(唐)나라 태종(太宗 598-649)은 사람 보는 눈이 밝았다. 누구든 한 번만 보면 그 사람이 재주가 있는지 어리석은지, 충성스러운지 요사스러운지를 가려낼 수 있었다. 태종(太宗)은 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금은 오직 한 사람. 따라서 마음은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한 마음에 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이들은 각기 장기(長技)를 가지고 임금에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임금이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이 사람들에게 넘어가게 되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임금은 잘 판단해야 한다.”

최고지도자가 자칫 판단이 흐려져 측근 몇 명에게 휘둘리게 되면 국난(國難)을 당하기 십상이다. “居寵思危  높은 지위에서 영화를 누리고 있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서경(書經)의 권면이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동물적 감각으로써 이들이 권력을 얻는 방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동소이하다. 먼저 줄대기 혹은 투자다. 미래의 권력을 찾아 그 주변의 핵심 인사들을 두루 섭렵한다. 사교성을 발휘해 환심을 얻고 권력을 얻는다. 권력 농단의 표본은 삼국지의 제왕적 십상시(十常侍)가 잘 보여준다.

중국 한(漢)나라 영제(靈帝) 때에 정권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10여 명의 중상시 즉 환관 장양(張讓), 조충(趙忠), 하운(夏惲), 곽승(郭勝), 손장(孫璋), 필남(畢嵐), 율숭(栗嵩), 단규(段珪), 고망(高望), 장공(張恭), 한리(韓悝) 등 10 명을 가리킨다.

영제(靈帝)는 십상시(十常侍)에 휘둘려 나랏일을 뒷전에 둔 채 거친 행동을 일삼다가 제국을 쇠퇴시켜 결국 망하게 한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 십상시(十常侍)는 넓은 봉토를 소유하고 정치를 장악해 실질적인 권력을 휘둘렀으며, 그 부모형제들도 높은 관직을 얻어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후한 189년 8월 25일 발생한 십상시(十常侍)의 난(亂)에서 2000여 명의 환관이 죽으면서 동탁(董卓)이 정권을 잡게 된다.

최고지도자가 민초, 곧 국민과 긴밀히 소통해야만 측근에 의한 국정 농단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 주역(周易)은 이렇게 경책(警責)하고 있잖은가. “天地否 天地不交而 萬物不通也(천지부 천지불교이 만물불통야)  하늘과 땅이 막혀 있구나.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지 못하니 만물이 불통하는구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말이 실려 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조그만 나라 정(鄭)나라는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항상 이웃 대국인 진(晉)과 초(楚)의 눈치를 보며 줄타기를 했다. 처음 송(宋)나라를 칠 때 초(楚)나라 편에 섰는데 송(宋)의 동맹국인 진(晉)이 12개국 제후와 연합하여 정(鄭)을 공격해 왔다.

다급해진 정(鄭)나라는 초(楚)에 긴급히 원군을 청하였으나 거부당해 할 수 없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진(晉) 도공(悼公)에 뇌물을 바쳤다. 진(晉) 도공(悼公)은 이번 전쟁에서 공이 큰 장군 위강(魏絳)에게 절반을 하사하면서 치하했다.

이때 위강(魏絳)이 받지 않고 겸손학 나라에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居安思危(거안사위) 思則有備(사즉유비) 有備無患(유비무환)  안락할 때 장차 있을 수 있는 위험을 생각하고 이런 생각이 있으면 재난이 닥치더라도 미리 방비할 수 있고 방비가 있으면 곧 우환이 없습니다."


중국 역사서인 서경(書經)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거총사위(居寵思危)이다.

거총사위(居寵思危)란 뜻을 이루었을 때는 앞으로 실의할 때도 있을 것을 생각하여 조심하라는 뜻으로, 잘 나갈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유사한 성어가 居安思危(거안사위)로 편안할 때 위기에 대비하라는 말이다.
<꽃사진: 마타피아>